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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 박서련
꼬마대장님
2020. 11. 1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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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드랑이에 손을 넣기 무섭게 귀를 간지럽히는 전빈의 웃음소리가 못내 사랑스러워 주룡은 그를 다시 껴안는다. 아직 서로가 낯설고 신기한 두 사람에게는 밤이 그리 길지 않다. 전빈이 물으면 주룡이 답하고, 주룡의 말에 전빈이 응한다. 둘의 이야기는 도무지 바닥을 보이지 않는다. 서로를 알기 전까지 오로지 서로에게 들려줄 말만을 모으며 산 사람들인 양, 혼례를 치를 즈음 시작되었던 겨울이 어느새 저무는 줄도 모르고. (28)
서방이 이래 어리고 약해서 우터한담?
내 서방 어리고 약하단 잡놈 무뢰배들을 이 손으로 작살내주어야지.
주룡의 능청에 전빈이 슬며시 웃음 짓는다. 어둡지만 얼굴에 대고 있던 손이 하관의 움직임을 따라 들썩이므로 알 수 있다. 혼인이란 것은, 부부가 된다는 것은 동무를 갖는 일이구나. 죽어도 날 따돌리지 않을 동무 하나가 내게 생긴 것이구나. 주룡은 문득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29)
전빈이 돌아누워 주룡을 마주 본다. 주룡은 제 얼굴을 감싸오는 전빈의 크고 찬 손에 마음이 저려오는 것을 느낀다.
모르갔어. 임자가 공을 세웠다는 거이 좋고 뿌듯한데, 어인지 나같은 거는 하찮아지는 듯한 생각이 자꾸 든다.
주룡 또한 고백하고 싶다. 당신이 다른 동지들이랑 조사 활동이니 뭐니 하느라 마을로 날 두고 내려갈 때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노라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기분이 뭔지 나도 잘 안다고.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고 나면 정말로 작아질 것만 같은 마음이다.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일이 될 것 같다. 주룡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전빈이 자기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욕망과는 별개로. 하여 주룡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64)
그렇지만 그따위 결속이 다 무어란 말인가. 여자 하나를, 어린 남자애 하나를 우스개로 만들지 않고서는 유지할 수 없는 결속이라면 그따위 것 없는 게 백번 낫지 않은가. 저들이 아무리 찧고 빻고 까불어봐야 졸개일 뿐 백장군처럼은 될 수 없는 건 그래서라는 걸 저들은 언제쯤 깨달을까. (79)
누가 나더러 모단 껄이 아니라 했다고 내가 정말 모단 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자기가 모단 껄이 아니라는 것, 모단 껄 되고 싶은 심정이 언감생심으로 보이리란 사실은 주룡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언제나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으니 도무지 모를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반장 때문은 아니다.
반장 같은 것은 모단 껄 되기에 요만큼도 방해가 될 수 없다.
구남성의 박해를 받았으니 이는 도리어 모단 껄 되기의 제일보에 진입한 것이다.
주룡은 그런 생각으로 남은 업무를 버티고, 기어이 집에 가서 울음을 터뜨린다. (140)
앞으로 너는 네가 바라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룡은 잠든 옥이의 이마를 다시 한 번 쓸어준다. 당차고 명랑하되 조금 덤벙거리는 것. 뭐 하나 별스러울 것 없는 보통 간나. 유행에 관심 많고 배움에 욕심 많은 아이. 어설프게 바라는 것은 많아졌는데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서 늘상 조금 찌푸린 얼굴. 잠든 지금마저도 무슨 꿈을 꾸는지 미간이 좁다. 그 얼굴에서 주룡은 강녀를 본다. 제 어린 날의 낯을 본다. (154)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주룡 씨가 그런 욕을 하는 것은 듣기가 싫어서 그랬소.
저짝이 먼처 욕을 하였는데 내래 욕 좀 하면 어드렇습네까?
그런 욕을 할 줄 안다는 것은 그런 욕을 들으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욕설은 듣는 쪽보다 하는 쪽의 품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룡씨는 어떻습니까? (204)
주룡은 누구도 함부로 평가하지 않기도 다짐했다. 더 배웠다고 잘난 것이 아니고 덜 배웠다고 못난 것이 아니다. 저 자신부터가 더 이상은 그런 식으로 평가받지 않기를 주룡은 원했다. (211)
박서련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나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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