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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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생의 의지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들은 삶이라는 모험에 기꺼이 뛰어든다. 지치고 고단한 날 이 그림책들을 펼쳐 보면 태어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다. 작고 평온한 세계에서 부침 없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이 아닐까 싶은 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태어난다. 아이들의 충만한 세계와 텅 빈 마음은 왜 흔들렸을까. 마음의 비율은 어째서 태어나는 쪽으로 기울었을까. 아마도 자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세계에 성장은 없다. 안락하고 평온하지만 그곳에서는 몸도 마음도 자라지 않는다. 고통도 슬픔도 없기에 기쁨도 행복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두 아이는 모두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용감한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부모를 응원하고 위로한다.
아이의 탄생에 오직 부모의 의지만 개입했다고 생각하면 아이의 모든 행불행은 부모의 책임이 된다. 부모의 미숙함과 세상의 불완전함은 아이를 돌보는 마음에 자주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서, 부족한 게 많아서, 내 아이가 덜 행복하거나 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 나에게 와준 것이라면 부모는 씩씩해질 수 있다. 함께 힘을 내볼 수 있다. 아이도 용기를 내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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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충고란 늘 위계 속에 있어서 권위적이고 무례했다. 나는 그들의 말보다 그들의 말투와 그 말투 속에 깃든 확신이 끔찍했다.
어른이 되고서야 그 마음을 짐작한다. 살아보니 경험의 총량에 비례하는 지혜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나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설 수 있도록 일으켜 주었던 말들은 언제나 나를 잡아끄는 말이 아니라 나를 안아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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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에게 큰소리로 훈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더이상 아이가 아닌데다가, 내 주위 사람들 대부분 자기 몫의 지혜는 스스로 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문제는 나다. 이제는 내가 어떤 순간, 누군가의 앞에서 이기고 싶다. 확신에 차서 내가 맞다고, 내 말을 들으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싶다. 언제 내가 이런 꼰대가 되었나. 식은땀이 난다. 그래서 주머니 속에 공깃돌 같은 말 하나를 넣어두었다. 그리고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고 말하고 싶어질 때마다 주문처럼 굴려본다.
진실도 작게 말한다.
무려 2500년 된 말이다. 목소리가 절로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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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불확실한 가운데 하스카프의 유일한 걱정은 가는 길에 사자 무리를 만나는 것이다. 아, 오해하면 안 된다. 하스카프가 사자 무리를 경계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사자가 너무 좋아서 자신이 여행을 포기하고 그만 그 자리에 눌러앉을까 봐서다. 이런 매력적인 고양이를 보았나. 그러나 하스카프의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그건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다. 타인의 시선과 내일의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스스로를 믿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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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은 어딜까. 지도상의 가장 먼 곳은 아닐 것이다. 세상 끝에는 타인들이 있다. 타인의 마음에 닿은 일이야말로 어쩌면 세상 가장 먼 곳까지 가보는 일이다. 우리가 문학을 통해 느끼는 감동의 기저에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이 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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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들을 찾기 위해서는 몸을 낮게 숙이고 귀를 기울이고 세심히 주위를 관찰해야 한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그 일은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과 닮았다. 요정을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으로 우리는 겨우 남을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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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태도가 하나의 덕목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을 한참 뒤 김연수의 <시절일기>를 읽으며 알았다. 그는 “겸손이 세계의 실체에 접근하는 가장 기초적인 기술”이라고 말한 뒤 곧바로 “겸손은 그저 타자가 몹시 형편없는 인간일지라도 그에게 아직도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섬세한 자각”이라는 피에르 자위의 글을 인용했다. 아, 겸손이었구나. 내가 아직 다 보지 못한 섬의 반대편을 상상하며 관계의 사망 선고를 얼마쯤 유예하려고 했을 때, 유예의 기한 동안 선고를 번복할 증거를 발견하려고 했을 때, 나는 겸손하고 싶었던 것이구나.
나는 <시절일기>를 읽었는데, 그것도 굉장히 재밌고 인상 깊게 읽었었는데 또 울림이 오다니. 심지어 저런 구절이 있었던 것도 생각이 전혀 안난다. 까마득할 만큼.
겸손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김연수 작가님도 멋있고 무루 작가님도 멋있다.
나도 반쯤 눈을 감고 조금은 뻔뻔하게 올라보고 싶다. 나도 겸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123;
그런데도 뭐가 아쉬워 집을 나가려느냐 묻는 꽃 화분에게 제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난 나한테 없는 뭔가를 갖고 싶어. 삶에는 모든 걸 갖는 것 말고도 뭔가 또 다른 게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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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따위 알게 뭐냐고 소리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직 고양이의 문이 열리지 않았던 나를 생각한다. 나에게 그랬듯 그들에게도 어느 날 문득 문이 열리는 날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 문을 열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을 열어주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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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가진 힘센 존재가 아무것도 나누어주지 않을 대 약한 이들은 버려진 것에라도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도둑고양이, 도둑북극곰, 도둑수달, 도둑너구리, 도둑고라니, 도둑멧돼지가 하려는 행위는 도둑질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몸부림이며 하루 치의 목숨을 연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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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보는 일은 끔찍했지만 좋은 것도 있었다. 나를 다 안다고 섣불리 확신하지 않는 예의 바른 상대의 진지한 질문에 진심으로 대답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왜 일하는 시간이 그리 짧은지, 왜 돈을 더 벌려고 하지 않는지, 결혼에 대한 어떤 이상이 있는지, 무엇이 나의 삶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는지. 신기하게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대화의 깊이는 관계의 거리가 아니라 경청하는 태도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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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즐겁게 굴러갔지만 알다시피 다시 혼자 남게 된 조각 앞에, 이번에는 처음 보는 이상한 것이 다가왔다. 빈틈이 없는 큰 동그라미였다. 자기는 이미 완전해서 짝이 필요 없다는 말에 조각이 실망하자 동그라미는 이렇게 말했다.
나하고 굴러갈 순 없어도 아마 너 혼자 굴러갈 수는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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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박자 없이 내달리고 흩어지는 일상에 마디를 그어보려고 애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날에도 아침 식사를 마치면 집안을 정돈하고, 오후에는 짧게라도 꼭 산책을 하려고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한 가지 일이 세 시간을 넘어가면 일단 책상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읽거나 쓰는 일이 속도가 붙는다고 종일 기력을 쏟지 않는다. 매일 규칙적으로 해나가지 않으면 꾸준히 오래 잘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03;
이들은 고맙게도 모두 혼자 잘 살아간다. 먼 곳에서 찾아오는 가족이 있거나 동네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집 안에서 그들은 철저히 단독자다. 자기 삶을 홀로 꾸려나가며 스스로를 책임진다. 그 모습이 결코 초라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