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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 다이 시지에
꼬마대장님
2020. 7. 1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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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평소처럼 가랑비가 아니라 우리의 머리 위, 지붕의 기와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할 만큼 거센 비였다. 그것 때문에 뤄는 훨씬 더 우울했을 것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재교육을 받을 운명이었다. 공산당 관보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노동자나 지식층 혁명당원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젊은이는 재교육 기간을 이 년으로 끝내고 가족이 있는 도시로 돌아갈 행운이 백 퍼센트였다. 하지만 '인민의 적'으로 분류된 집안의 자식들에게는 천 명 중 세 명이 될까말까 할 정도로 집으로 돌아갈 기회가 희박했다. 간단히 말해서 뤄와 나의 삶은 끝장난 셈이었다. 우리에게는 머리 다 빠진 파파노인이 될 때까지 오두막집에서 살다가 끝내는 하얀 수의에 덮이고말, 실로 우스꽝스러운 미래만 남아 있었다. 정말로 맥이 풀리고 잠 못 이루고 번민할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28)
나는 웃고 있는 그녀의 두 눈에서 우리 마을 처녀들의 눈과 똑같은 순박함을 발견했다. 그녀의 눈은 천연보석과 자연 금속의 광채를 띠었는데, 긴 속눈썹과 약간 위로 치켜올라간 눈초리 때문에 그 효과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37)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은 이후로 '안경잡이'는 완전히 딴사람이 돼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두도 내지 못했을 말투를 함부로 쓰고 있었다. 나는 앞날에 대한 작은 희망이 사람을 그토록 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109)
뭐라고? 내가 그애의 열쇠고리 건지는 걸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고? 네가 나를, 주인이 던진 뼈다귀를 찾으러 뛰어가는 개만큼 얼빠진 애로 생각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난 발자크의 프랑스 아가씨가 아니라구. 난 두메산골에 사는 촌뜨기야. 난 그런 식으로 뤄를 기쁘게 해주는 게 정말 좋았어. (198)
평소대로 뤄와 나는 바느질 처녀의 집을 방문했다. 나는 그애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그 집으로 들어서던 나는 웬 도시의 고등학생이 있는가 했다. 평소에는 길게 땋아 빨간 리본으로 묶던 머리를 귀밑까지 잘라 단발머리로 만들었는데, 그 때문에 그애는 신여성 같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풍겼다. 그 무렵 그애가 수선하던 상의도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뤄는 뜻밖의 변형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가 몹시 기뻐하자 그애는 멋지게 바뀐 작품을 입어 보이기까지 했다. 간소한 남성복 스타일의 재킷에 새로운 머리 모양, 평범한 운동화가 아닌 새하얀 테니스화 덕분에 그애는 묘한 성적 매력을 풍겼다. 그 우아한 맵시는 어설픈 산골 처녀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변신한 그녀를 보고 뤄는 마치 자신이 완성한 작품을 감상하는 예술가처럼 흡족해했다. 뤄는 내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넉 달 동안 책을 읽어준 보람이 있잖아."
그 변신의 결과, 발자크식 재교육의 결과는 뤄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그 말에도 담겨 있었건만, 우리는 그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자기 만족 때문에 잠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사랑의 미덕을 과대평가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애한테 읽어주기는 했지만 정작 우리는 그 소설들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일까? (246)
그 우아한 맵시는 어설픈 산골 처녀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 죽었을까? 그리고 누가 나의 죽음을 지켜보았을까.
현숙샘의 추천만큼 나는 재밌게 읽지는 않았다 사실.
옛날 책이라 그런가, 다소 불편한 장면들도 있었고 그냥 그랬다.
그래도 샘의 말씀과 나의 생각의 공통이 되는 부분은 바로 책의 힘이라는 점.
하긴 나도 뤄와 주인공처럼 책을 전혀 읽지 못하는 날에 갇혀버린다면..
아 .. 정말 끔찍할 것 같긴하다.
이 책 덕분에 발자크의 작품들이 덩달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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