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 알베르 카뮈
남자들과 여자들은 이른바 성행위를 하면서 서로를 급속도로 탕진하거나 아니면 두 사람만의 기나긴 습관에 빠져든다. (13)
서로를 탕진하거나, 두 사람만의 기나긴 습관에 빠진다.
아름답고 날카로운 표현이다.
사실 재앙은 모두가 다 겪는 것인데도, 그것이 자기에게 닥치면 여간해서는 믿지 못하게 된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페스트도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페스트나 전쟁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50)
맞아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코로나19 라는 질병.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앙을 비현실적인 것, 곧 지나가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재앙이 지나가버릴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사라지는 쪽은 사람들, 누구보다도 인본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리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들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재앙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 사업을 했고, 여행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갖고 있었다. 미래와 여행, 토론을 금지하는 페스트를 그들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유롭다고 믿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51)
창문을 여니 도시의 소음이 대뜸 커졌다. 이웃에 있는 작업장에서 기계톱 소리가 짧게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리외는 머리를 흔들었다. 확실한 것은 매일의 노동 속에 있었고 그 외의 것은 실낱들, 무의미한 몸짓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55)
"의견을 솔직하게 말씀해주시죠. 이 병이 페스트라고 확신하시나요?"
"문제를 잘못 제기하셨습니다. 이건 용어 문제가 아니라 시간 문제니까요." (67)
그런 때가 있다. 용어가 더이상 중요한게 아닌 일들.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따. 그때까지 시민들은 이 이상한 사건 때문에 놀라고 불안해하기는 했지만 평소 하던 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며 맡은 일을 그대로 했고, 아마 계속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의 출입문이 봉쇄되자, 서술자를 포함해 모든 시민들이 똑같은 난관에 봉착했으며 알아서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이 초반 몇 주부터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이 되었고, 그 오랜 유배 기간 동안 공포심과 더불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주된 감정이 되었다. (85)
다른 상황이었다면 우리 시민들은 야외 생활도 하고 좀더 활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페스트 때문에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그 침울한 도시를 맴돌다보니 하루하루 추억을 곱씹으며 부질없는 유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89)
달고나 커피와 같은 -시간죽이기- 유행이 떠올랐다.
이런 익숙지 않은 광경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민들은 어떤 일이 닥쳤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이별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을 공통적으로 느끼면서도 그들은 계속해서 개인적 관심사를 무엇보다 중시했다. 그 질병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습관을 방해하거나 이해관계에 해를 끼치는 것에 특히 민감했다. (97)
나도 나의 습관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
예컨대 주기적으로 개봉하는 신작을 골라서 맘에 드는 영화보기, 훌쩍 여행가기(국내든 해외든) 등
이렇게 해서 오랑 시의 모습은 독특해졌다. 보행자 수가 현저히 늘었고, 가게나 사무실이 문을 닫는 바람에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이 평소 같은면 한산한 시간인데도 거리와 카페를 가득 메웠다. 그들은 아직까지는 실업자가 아니라 휴가중이었다. 그리하여 예를 들어 오후 세시경이면 오랑 시는 맑은 하늘 아래 공개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교통을 차단하고, 시민들이 축제에 참여하려고 가게 문을 닫고 거리에 쏟아져 나온, 축제중인 도시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98)
우리집 501호가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매일이 방학이었고, 평소보다 겨울방학을 두 달이나 더 누렸다. 매일 재밌고 배부르게.
그렇다, 페스트는 마치 추상처럼 단조로웠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리외 자신이었다. (110)
황혼녘에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돌아다니던 그 몇 주를 기진맥진한 상태로 보낸 끝에, 리외는 더이상 동정심에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정심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면 동정하는 것도 피곤해지는 법이다. 몹시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이 서서히 닫히고 있다는 느낌만이 리외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그러면 임무가 수월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뻤다. 새벽 두시에 아들을 맞이하면서 그의 어머니는 자기를 바라보는 아들의 공허한 눈길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그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했지만, 당시에 리외가 받을 수 있는 위안은 그것밖에 없었다. 추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약간 추상을 닮을 필요가 있다. (111)
해수욕이 불가능해진 탓도 있었고, 그들이 자신에게 닥친 이 놀라운 사건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 인정하지 못하면서도 어떤 변화가 생긴 것만은 분명히 느끼는 매우 특별한 정신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113)
벌써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한 책들과 강연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도 아마 이 특별한 정신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겠지.
당시에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이미지는, 적어도 그가 리외에게 말한 바에 의하면, 파리에 대한 이미지였다. 오래된 석조 건물들과 강변의 풍경, 팔레루아얄의 비둘기들, 북역, 팡테옹 근처의 인적 없는 구역,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줄 미처 몰랐던 다른 장소들이 랑베르를 사로잡아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132)
우리 각자에게도 파리로 대변되는 이미지들이 있겠지?
나는 무엇일까.
"아! 차라리 지진이면 좋겠어요! 지진은 한번 흔들리면 더이상 말이 필요 없으니까요... 사망자와 생존자를 세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 나잖아요. 그런데 이 망할 놈의 병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마음으로 병을 앓게 한다니까요." (138)
당시에 희망을 하나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나보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201)
이렇듯 질병은 얼핏 보면 포위된 자로서 느끼는 연대의식을 시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전통적 군집관계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저마다 고독에 잠기게 했다. 이로 인해 혼란이 초래되었다. (203)
재앙만큼 보잘것없는 것은 없고, 큰 불행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단조롭게 느껴진다. (212)
페스트 발생 초기만 해도 그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뚜렷이 기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행복해했던 어떤 날, 이런 것들은 모두 분명하게 기억났지만, 그들이 그 사람을 다시 그려보는 바로 그 순간에, 또 이제는 이렇게도 먼 곳이 되어버린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그 시기에 그들은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페스트가 둘째 단계로 접어들자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얼굴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이지만, 얼굴에 살이 없어져 마음속에서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관련해 초기 몇 주 동안에는 환영만 상대한다고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그후에는 추억 속에 간직해온 희미한 색깔마저 잃어버림으로써, 환영도 예전보다 살이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기나긴 이별을 겪자 그들은 전에 누렸던 친밀함을 더이상 상상하지 못했고, 언제라도 손을 얹을 수 있었던 한 존재가 어떻게 그들 곁에 있을 수 있었는지도 더이상 상상하지 못했다. (213)
페스트로 인한 이별이든, 그 무엇으로 인한 이별이든, 이별에의 감정은 모양과 질감이 비슷한가보다.
이 부분이 참 좋아서 눈으로 여러번 읽었는데, 읽으면서 내가 했던 이별 중 너와 관련한 이별이 떠올랐다.
정말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고 이제는 스스로 확신한다. 사랑을 열병에 비유하곤 하듯, 그기간 동안 만큼은 나는 너를 앓았다. 그리고 그만큼 이별도 혹독하게도 아팠다. 앓는 동안에도 참 많이 아픈 사랑이었는데, 이별도 아팠어서 떠오른건지도 모른다.
이 부분과 연관하여 든 두 번째 생각, 내 생일에 우리는 속상해했고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화를 냈고 슬퍼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너는 미국 사람이라며 미국은 아직 9월 12일이라는 말도 안되는 말로 다시 내 생일을 만들어주었고, 우리는 웃었고 생일 초를 불었다. 그때 너는 깜짝 준비해둔 내 방과 내 케이크와 편지를 보는 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초를 불기 전, 나는 너에게 물었다. "나 예뻐?" 그랬더니 너는 웃으면서 "응. 엄청 엄청 예뻐."라고 대답해주고 우리는 초를 불었다.
아마 이 기억이 떠오른건, 너와 헤어지고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 내 폰 어느 구석에서 우연히 이 영상을 발견하고 본 영향이 클 것 같다. 그때 나는 이미 오래 지났기 때문에 사실 마음이 많이 아프거나, 그립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감정은 못 느꼈지만 나를 담고 있는 너의 시선과 "엄청 예뻐"라고 말해주는 너의 다정한 말이 너무나도 아득하게 느껴져 몇 번을 더 본 뒤에야 영상을 삭제했었다.
정말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훨씬 커서 그저 최악의 남자친구라고만 평가했었는데, 용케 자리 하고 있었던 그 영상은 내가 너를 왜 좋아했었는지 알게 해주었다. 너의 다정한 말과 나를 무해하게 좋아해준 마음. 그래서 나도 너를 앓았던 거겠지.
그런데 시간이 흘러 2020년 5월의 마지막 금요일인 오늘에는, 그런 너에게 기대고 안겨 있을 수 있었다는 것 조차 상상할 수 없게 됐다. 이 글의 끝처럼.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런 일은 그들이 갖고 있던 가장 개인적인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페스트 초기에는 남들이 볼 땐 아무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이지만 자기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들이 그리도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럼으로써 예전에 개인 생활을 했다면 이제는 반대로 남들이 관심 갖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고,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했으며, 사랑마저도 그들에게는 가장 추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216)
리외가 몸을 일으키면 확고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행복을 택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수치스러울 수 있어요." 랑베르가 말했다. (244)
랑베르의 갑작스런 선택에 진짜 놀랐던 부분.
소설 내내 그가 보여준 모습이 한결같았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이 꽤 충격이었고 이유가 궁금해졌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파늘루의 말이 맞아요." 타루가 말했다. "죄 없는 젊은이가 눈을 잃었을 때, 기독교인이라면 신앙을 잃거나 아니면 눈이 빠진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파늘루는 신앙을 잃기를 원치 않으니까, 끝까지 갈 거예요.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거예요." (268)
이 부근을 차지한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참 어렵고도 중요했다.
페스트가 가져온 공평성이 효과를 발휘해 시민들 사이에서 평등이 강화될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본래 갖고 있던 이기심 때문에 페스트는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의의 감정만 심화시키고 말았다. 물론 죽음이라는 완전무결한 평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런 평등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76)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그래요,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페스트 환자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죽음이 아니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거고요. (295)
페스트 그자체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페스트를 두려워해야할지도 모른다.
허허허.
페스트를 품고 키우는 사람이 꽤 많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 내 주변. 학교에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이 코로나를 품고 있다.
타루는 그럴 수도 있지만 머지 않아 시의 출입문이 열릴테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게 나을 거라고 말했다.
"좋아요." 코타르가 말했다. "받아들이죠. 그런데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극장에 새 필름이 들어오는 거죠." 타루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326)
어떤 의미에서는 페스트가 너무 갑자기 끝난 것 같아서 그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행복은 전속력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일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복구될 것이고 기쁨은 화상을 입은 것과 같아서 음미할 틈이 없다는 사실을 랑베르는 깨달았다. (344)
2017년 2월의 내가 떠올랐다.
정말로 화상을 입은 것 같아서 음미할 틈이 없었다. 음미해도 되는가에 대한 자격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겪었던 감정과 상황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니.
멋진 까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