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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구하기 :: 개리 비숍

꼬마대장님 2020. 4. 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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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간단히말해서 당신은 당신이 하는 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하는 말의 ‘본질’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에게 인생이 버겁다면 실제로 버거운 거다. 혼란이 생기는 이유는 ‘나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거꾸로다. 실제로는 당신은 자기 대화를 거쳐 인생 경험을 창조하고, 그런 다음 거기에 맞춰서 행동한다. 언제나 그랬다. 당신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결단코 ‘있는 그대로’의 인생이 아니다. 당신이 상대하는 건 인생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다. 사람에 따라 인생에 대한 경험이 그토록 다양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25;
일상생활에서 당신은 대부분 정해진 순서를 반복한다. 출퇴근길에 출구를 잘못 나가고, 바지와 신발, 재킷을 매번 똑같은 식으로 입고, 늘 하는 식으로 양치질을 하고, 크게 보면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기계적으로 사는 것이다.
당신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다. 잠재력에 눈뜨고 있지 않다. 당신의 존재를 밝혀줄 무엇을 의식하고 있지 않다. 이 모든 것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인생을 바꿔놓을 일들을 하지 않고 있다.

 

34;
자기 수양이란 스스로 하겠다고 말한 일을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을 때조차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기분이 들 때조차 긍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때의 행동이란 ‘행동하는 척’이 아니다. 그러니 만약 에너지가 솟거나 긍정적 기분이 들거나 열정이 생길 때까지, 혹은 당신의 차크라가 선명한 노란색으로 빛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면, 그렇게 실컷 기다려라. 아주 긴 기다림이 될 것이다.

뼈 맞았다요,,

 

47;
자기 방해는 하루에도 사소한 방식으로 수없이 일어난다. 자기 방해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시도 때도 없이 늘 자기 방해를 저지르고 있다.

 

51;
그토록 평범하게 반응해서는 정말로 비범한 삶을 살 수 없다.
늘 가던 대로 쉬운 길을 가도록 강요받을 때조차 안 된다고, 일어나라고, 대단한 걸 이루자고 스스로에게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그런 요구는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다.

!!
그러고 보니 나에게 스스로 강력하게 요구한 적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꾸준하게도 자기 방해를 해오고, 당해왔구나. 허허ㅠ

 

67;
당신도 인생의 매 순간을 소중한 무언가를 좇으며 살아간다. 그게 5분 후가 되었든, 5년 후가 되었든 그 무언가는 당연히 미래 어느 시점에 존재한다. 그러나 당신이 좇는 평화나 기쁨, 만족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78;
내던져지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대화’다. 내던져진 대화에서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주제를 다룬다. 그리고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전반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내던져진 것에 대화가 있다고는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다.
ㅇㅂㅇ.. 깊은 인사이트.

 

86;
핵심은 이것이다. 당신의 진짜 삶을 순간순간이 모여 이뤄진다. 좋든 싫든 당신은 언제나 현재를 살고 있을 것이다.

 

95;
자, 그러면 이제는 이 장면을 스타벅스 구석에서 지켜 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사건 속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올해?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을 꼽으라면 이것.
이 책을 통해 했던 것은 아니지만, ‘관찰자가 되어 나 바라보기’는 정말 강추.
꽤 건강한 견지에서 나를 보고, 나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이미 2020년 1분기에 나는 이것을 통해 톡톡히 효과봤다.

 

99;
둘 중 어느 이야기가 ‘진실’인가?
흠, 둘 다 진실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상대와 부딪힌 게 당신의 직접적 경험이고, 당신은 그 대문에 취업 면접이라는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당신은 사건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으로, 양측 모두에게 제각각의 이유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첫 번째 시나리오만을 보거나 경험했다면 잘못은 순전히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진실의 까다로운 측면이다. 우리가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만 진실을 바라본다는 사실 말이다. 이 연습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보라. 진실이라고 의지해왔던 것은 사건이나 환경에 따른 개인적 경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개인적인 경험을 마치 불변의 사실처럼 여기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인생을 만들어나간다. (중략)
당신만의 확고한 진실은 당신을 통해 연명한다. 진실을 영속시키는 것은 당신이다. 이제는 모두 당신 책임이다.

깨달음을 주었던 부분.
세상에, 나의 확고한 진실은 사실 내가 만들고 연명하던 것이다. 연명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영속(!)까지라니. ㅠㅠㅠㅠㅠㅠ
너무 맞는 말이라 정말 반박할 수가 없다. 허허허ㅠㅠㅠㅠㅠㅠ

 

101;
그동안 당신의 ‘진실’이 객관적인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있는 그대로 확고부동한 진실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다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치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사업에서도, 가족 내에서도 말이다. 단일한 진실에 동의하고 받아들이려고 고통스럽게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단일한 진실이란 없다.

 

103;
당신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중이다. 인생을 정말로 별 볼 일 없게 만드는 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당신도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느니 차라리 변명하는 쪽을 택했다.

 

112;
때론 그들은 변호사, 의사, 선생님 등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유형의 ‘성공한’ 사회 구성원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뭔가 모자라다는,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을 가지고 살아간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나와,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커피를 꿀떡꿀떡 삼기코는, 늘 똑같은 일상 속으로 뛰어든다. 회사에 도착할 때부터 게임은 시작이다. 그들은 자신의 결론을 상기시키는 상황이나 사람을 회피하거나 뒤에서 조종하며 마치 자신의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 ‘척’한다.
그들은 자신의 결론이 보이지 않게 숨기고, 막아내고, 마음에서 그리고 시야에서 밀어낸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발버둥 친다. 최악의 자기 자신과 덤벼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한계치 사이에서 매일같이 전투를 벌인다. 그 한계는 그가 몇 날, 몇 주, 몇 달, 몇 년을 허물고, 줄이고, 축소해온 것이다.

123;
이 말이 거북하다면 지금 당신은 피해자로 불리고 싶어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피해자인지 아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이 경우 당신의 삶을 지금처럼 만든 사람은 당신, 오직 당신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우리는 탓할 사람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억울하게 만드는 것도, 냉담하게 만드는 것도 당신이고 당신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것도 당신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이해하자는 얘기다.

132;
이 모든 것의 문제점은 그들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당신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당신은 오직 당신의 결론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그들을 본다. 당신의 테스트는 공정하지 않다. 상대가 탈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내 상사가 최악이라는 데 내 친구들도 다들 ‘동의’했다고요!” 당신은 저들이 당신의 결론을 확인해줬다고 말하지만, 그건 그냥 뒷담화에 불과하다. 이왕에 이 문제에 접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제발 그런 헛소리는 그만두길 바란다.

나는 오직 나의 결론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본다-라니, 충격인데 정말 맞는 말. 허허..
매일 나는 자기 확신을 더해 가고 있는 중인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나는 늘 이기고 있는 것이라는 뜻과 동일하다.
그러고 보니 많은 일들과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나의 결론이라는 렌즈를 통해 나의 결론을 ‘확인’하기에 바빴다.


134;
실컷 응징을 즐기다 보면 당신 스스로 그런 아픈 진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원망이란 당신 스스로 짊어진 짐이다. 물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알아둬라. 그 짐은 진짜이고,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당신을 무겁게 짓누른다.

148;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본인의 잠재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그들도 알고 있다. 어찌 보면 그들의 똑똑함이나 직관은 오히려 저주다. 그게 그들의 결론을 더욱 실감 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더 큰 변화를 만들고, 대단히 멋진 삶을 살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꼼짝하지 못한다.
그들은 무지가 축복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가장 통찰력 있고 가장 직관적인 사람들이 가장 큰 환멸을 느끼고 가장 냉소적이기도 하다. 이들의 결론은 가장 파괴적인 효과를 내고,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이유와 논리를 가진 아주 설득력 있는 핑계를 달고 온다. 그래봤자 핑계다.

 오마이갓. 정말 가장 띵했던 부분.
그래봤자 핑계다.

155;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때가 바로 당신이 어느 한 영역, 때로는 모든 영역에 대한 당신의 결론에 푹 빠져 있을 때다.
당신이 그 안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때 결론들은 당신을 엄습한다. 당신이 지고 있을 때, 실패하고 있을 때, 거부 당했을 때 혹은 그냥 잘해내지 못하고 있을 때 당신 머리에 불쑥 떠오르는 익숙하고 정형화된 생각은 무엇인가? (중략)
투쟁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보라. 마냥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관찰자가 되어라. 피해자가 아니라 목격자가 돼라. 혼자서 일일극 드라마를 찍고 있는 당신의 자기 방해로부터 멀찌감치 물러나 ‘생각’이라는 것을 하라. 당신 힘으로 그 작은 미스터리를 끼워 맞춰보라.
“우리는 평생 갇힐 인생의 사슬을 스스로 만든다.” _찰스 디킨스

161;
당신이 좇는 모든 게 왜 늘 ‘나중’인지 아직 눈치채지 못했는가? ‘지금 당장, 여기’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당신이 바라는 그것이 어찌어찌하여 이뤄진다손 치더라도, 그 자리는 다른 목표로 대체될 것이다. 그때부터는 그 새로운 것을 좇게 될 것이다. 아니면 아예 망쳐버리거나. 어느 쪽이 되었든 날짜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헛짓거리일 것이다.

이 문장과는 무관하지만, 갑자기 쓰는 도중에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교장선생님이 떠올랐다.
되게 똑똑하신 분이고 엄한 분이셨다.
떠오른 기억을 순서대로 써보자면, 나는 어느 여름날 독서대에서 자습을 하고 있었고 교장샘이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셨고 나를 교장실로 데려가셨다. 내 기억으로는 나는 교장실로 불려갈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미 여름방학 오자가 시작되기 전에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장실에서 혼났나? 잔소리를 들었나? 뭐 그런 류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불려갔었는지가 기억이 안난다. 2학년 언니들이랑 싸워서 그랬나? 야자를 쨌어서 그랬나? 뭔지는 잘 기억 안나지만, 이유가 잘 기억 안나는걸 보니 내가 반성할만큼의 일이 아니었나보다. 근데 정말 나는 그 여름에 교장실에 왜 갔던 걸까?
그 교장선생님은 잘 계실까. 신학을 공부하시다가 윤리를 전공하셨던 그 분은 어떤 의미에서는 내 선배 교사라고도 할 수 있겠구나.
지금쯤 70대시겠구나.. 다소 완고한 얼굴을 하고 유려한 언변을 가진 교장선생님, 특히 몸이 정말 꼿꼿하셨다 인상적일만큼.
무튼 그 여름 나는 정말 오자를 열심히 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도 기억나는 함수들.

163;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들을 붙잡으려 한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유동적인 것을 가지고 뭔가 단단한 것을 만들려고 애쓴다. 당신의 진정한 자기 표현은 존재한다는 게 무엇인지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신은 대부분의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행복이나 사랑, 열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추구’한다. 그게 마치 획득할 수 있는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깊은 인사이트.
저것들은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표현’해야 할 대상이다.
충격..
그치.. 진짜 충격이다. 표현의 대상을 획득하려 하니 괴리가 생길수밖에야.

182;
저 말은 우리가 지금의 자신, 앞으로의 자신이 과거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중독됐다는 뜻이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과거의 나를 더낫게 만드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동시에 이 말은 그동안 존재했던 나를 계속 유지하라는 소리다. 과거의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개선할 것도, 바꿀 것도 없으며 모든 게 해결되고 난 미래도 없을테니 말이다. 자아는 스스로 잠식한다. 계속.

내가 과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중독됐다-라고 표현하다니. 진짜 날카롭다. 나도 모르게 발전을 꾀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한계를 긋는 일이 되기도 했구나.

 

186;
과거에 있었던 일 ‘때문에’ 앞으로 하지 않을 일들이 당신 인생에는 수두룩하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 지금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다. 작년에 일어난 일이 올해의 원인이다. 어릴 때 일어난 일이 어른이 된 우리 삶의 원인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도록 훈련받았다. 당연한 인과 같지만 절대 당연하지 않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런 식으로 속았고 세뇌당했다. (중략)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따라온다. 우리가 정말로 새로운 방식으로 살 수 있다면, 자기 방해 충동을 없앨 수 있다면 과거를 지침으로 삼거나 과거에서 통찰을 얻는 일은 그만둔다는 뜻인가? 당연하다! (중략)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지침으로 삼아야 할까?
당연히 미래다.

189;
세상에, 이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끝에서부터 시작하는 삶 말이다.

199;
잠들어 있는 과거에서 벗어나면, 당신 앞에 놓인 것을 당신 뒤에 있는 것들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면, 정말로 무한한 잠재력이 생긴다.
계속해서 깨어 있다면 말이다. (중략)
기억하라. 자기 방해의 행동이 저절로 멈추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당신 삶에 새로운 행동과 결과를 가득 채울 미래, 요컨대 새로운 삶은 당신이 설계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그런 삶을 가질 수 있다. 당장 가능하다.


204;
당신은 이런 행동을 하루에 두 번 해야 할 수도 있고, 하루에 200번 해야 할 수도 있다. 진정한 변화는 그렇게 해야 만들어진다. 정말로 원하는 것을 위해 진지하게, 모든 것을 걸고, 송두리째 자신의 존재를 던져야 한다. 특히나 당신이 패배했을 때, 우울할 때, 혼란스러울 때, 또는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를 배신할 핑계를 찾고 싶을 때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208;
이해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과거를 반복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드러내는 삶을 살 것인가? 선택을 내려야 할 때다.
사는 동안 매일매일 이 과제에 매달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분명하다.
당신 삶에 대단한 비밀 같은 것은 없다. 느닷없는 운은 없다. 신비스러운 뜻 따위도 없다. 당신을 가장 위대하게 만들어주거나 인생에 대단한 목적을 부여해줄 수 있는 단일한 무언가는 없다.

209;
인생이 정말로 무엇인지 아는가? 당신이 부여받은 그 몸뚱이를 갖고 놀 수 있는 기회다. 시도도 해보고, 속여도 보고, 한계까지 밀어붙여도 보고, 빌어먹을 죽기 전까지 이 삶을 살아볼 기회. 당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확실한 무엇은? 단 하나다. 우리는 죽는다는 것.



전반적으로 매우 아쉬웠던 이번 책.
작가의 전 작품이 좋았어서 산 책인데, 형만한 아우 없다. (정아 미안)
핵심이 빠진 느낌의 책.
무언가를 강조하고 역설하는데, 그 무언가를 알려주지 않는 느낌.
번역에서 오는 모호함일까?
무튼 아쉬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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