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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정혜윤
꼬마대장님
2019. 9. 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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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화를 보러가려고 했엇더라,
김천에서 공주랑 영화보러 메가박스에 갔다가 커피 한 잔 사서 보려고 거기 옆에 있는 작은 토프레소에 들렀다.
음료가 나오기 전까지 잠깐 집었던 책인데, 괜찮은 것 같아서 서울 올라오는 길에 바로드림으로 샀었다.
삶은 문제가 있거나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으니까요. 사실 삶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무겁습니다. (8)
이런 질문들은 정말 소중합니다.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필요치 않아. 난 너무 만족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아마 책을 읽지 않아도 될 겁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가슴속에 한마디를 담고 있습니다. "도와줘!" 우린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을 찾으리란 희망으로 책장을 들춥니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반드시 삶의 변화를 위한 실마리를 찾아내야만 하는 겁니다. (9)
책을 읽는데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나의 본질적인 이유랑 같아서 참 반가웠다.
그런데 영혼이 이렇게 잠들어 버리면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뭘까요? 아주 간단히 말하면, 내가 이 세상에서 겪는 일이겠죠. 그러니 세상을 잘 알수록 좋겠죠. 그러나 세상을 알고 싶다고 생각해도 혼자서는 제대로 탐구할 수가 없습니다. 대화 상대가 필요합니다. 책은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은 자꾸 일어나라고 합니다. 깨어나라고 합니다. 그만 자라고 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생각 못 한 게 있다고 알려줍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아주 작다고 말합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혹은 어째서 헤쳐 나가지 못하는지 보여 줍니다. (15)
'영혼이 잠들어버린다' 내가 생각하기만 했던 것을 정제된 표현으로 만났을 때의 기쁨.
저는 책을 읽고 한 발짝씩 나가며 거기서 배운 디테일들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비인격적으로 취급하는 일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거래되는 세상에서 사랑만은 유일하게 거래할 수 없습니다. 사랑만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됩니다. (중략)
우리에겐 오늘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나를 바꾸어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여기서 힘 있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 아닐까요? 나의 삶은 유한하지만 애쓰고 있다는 것. 그것도 네 옆에서 너와 함께 너의 영향 아래서. (19)
우리에겐 일정표가 있습니다. 월요일엔 친구를 만나고, 화요일엔 미장원에 가고, 수요일엔 사우나에 가고, 목요일엔 한잔하고, 금요일엔... 오스트리아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하나의 흥미에서 다른 흥미로 끝없이 관심사를 옮겨 가기만 하는 그런 삶을 '코미디'라고 불렀습니다. (33)
그러게 코미디다 정말. 참 잘 꼬집고 잡아낸다. 작가들은..
그런 헛수고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나날의 단조로움을 피하려는 것이 목적인 시간,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목적인 시간, 삶에 문제가 있어도 문제를 잊어버리는 것이 목적인 시간들로 촘촘히 일정표를 짠다면 우리 삶도 비극이자 코미디가 되어 버리는 걸까요? 그렇다면 "웃길 궁리" 대신 무엇에 몰두해야 할까요?
어떻게 삶의 일정표를 짜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바쁘다 바쁘다 하는데 대체 어떻게 일정표를 짜는 걸까요? 저는 이 단편을 읽은 후 풀지 못한 많은 궁금증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라디오 가게 주인의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우리가 '기쁨'에 몰두해 본다면 어떨까 하고요. 기쁨에 몰두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까 하고요. 그 시간 동안 돈을 벌지 못해도 충분히 휴식하지 못해도 우린 자기 자신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저는 그 가게 주인을 본 뒤로 자율성의 시간을 '나를 키우는 시간'이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린 내 자아의 장인이 되어 보는 겁니다. 우린 장인이란 말을 노동에 관해서만 쓰고 있지만 이번엔 장인이란 말을 자기 자신의 영혼에 써 보는 겁니다. 오래되어 부서진, 쓸모없게 된 라디오를 연구하듯 자기 자신을 연구해 보는 겁니다. 영혼에도 납땜질을 해 보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더 나은 소리가 나오도록 자신이 이미 알던 것들, 익숙한 것들을 이리저리 재배치해 보는 겁니다. (중략)
우리도 어린아이를 기르듯, 한 그루 나무를 가꾸듯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면서 자신을 키워 보는 겁니다. 우리에겐 이렇게 '나를 키우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언제부턴가 삶 전체가 원하지 않는 시간들, 아무 재미도 없는 무의미하고 무료하고 피로한 시간들, 비극이자 코미디인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삶은 내가 원한 삶이었다고 말하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더구나 자기 자신에게 무관심한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무관심하다 보면 사회나 타인이 나를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그저 자신은 희생자이자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동정에 숨거나 억울함이나 자기 연민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나를 키우는 시간'은 더더욱 필요합니다. (36)
그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면 귀신에라도 홀린 듯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지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도망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N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붕붕 뜬 채로 살게 되었습니다. (37)
내가 꽤 오래간 겪은(겪고 있는?) 붕붕 뜬 상태.
토요일, 일요일, 짧은 여행, 혹은 퇴근 후의 시간, 이런 짧은 여유 시간은 내일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휴식의 시간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잘 먹고 푹 자 둬야 하는 시간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어떤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비참함과 모욕을 참아야 하는 순간, 굽실거려야 하는 순간,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시간, 기계적으로 단순하게 흘려 보내는 시간도 있지만 밤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녘에 깨어 있는 시간도 있습니다. 하나의 상품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다는 것, 명령에 따라 꾸역꾸역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 나도 꿈을 펼치고 싶다는 것, 내 손으로 기쁨을 창조해보고 싶다는 것, 어떻게 해서든 인간적으로 좀 더 훌륭해지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 우리를 잠 못 들게 하는 갈망 안에는 이런 마음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39)
하정우의 <걷는 사람>이 떠올랐다.
우리에겐 의지가 필요합니다. 의지가 어떻게 생기는가 깊이 성찰했던 사람 중 하나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리자면 의지는 명령 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무게, 즉 사랑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혼의 무게로 치자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영혼을 단단한 핵처럼 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하나 고유한 행성이 되고 또 그만한 무게와 자신만의 중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맘껏 세상에 흩뿌려 보지 못한 사랑의 무게, 열정의 무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의지 때문에 편안함을 잃게 될 수도 있고, 단잠을 자지 못할 수도 있고, 수입이 줄어들 수도, 쓸쓸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뭔가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리고 그것을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확실히 현실을, 그리고 시간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합니다.
배워서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삶 속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에너지들이 시간을 채웁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데 쓴 시간들은 다시 자기 자신을 만듭니다. 성공이나 명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요. 결국 나를 키우는 시간에는 내가 '한 성공한 인간으로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사는 데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중략)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그것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골라서 읽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스스로 '굳이' 해보는 경험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키워 보는 경험입니다. 나를 키우는 시간은 내가 한 인간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낄 만한 시간입니다. (45)
우리는 하나하나 다른 행성이래. 다른 중력, 다른 무게로 살고 있는 행성.
엄청 예쁜 생각인 것 같다.
사랑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엔 두 사람이 만나 셋이 되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동안 나머지 한쪽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어떤 것, 새로운 세계관이든 잊을 수 없는 경험이든 진리든 뭐든 제3의 것이 태어납니다. 이것은 최초의 만남에 뭔가를 계속 덧붙일 때 가능합니다. 최초의 만남, 감탄, 호기심에 계속 뭔가를 더하는 것, 나와 뭔가가 만나 새로운 것이 태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사랑하는 자의 능력입니다. (55)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들, 새롭게 만난 것들, 새롭게 창조한 것들 속에서 잠들기를 꿈꾸면 됩니다. (56)
책을 읽는 능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데 꼭 필요한 능력들이 있긴 합니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자신을 채웠던 반복과 습관의 타율성을 비우고 새로운 리듬과 질서를 받아들이는 능력 같은 겁니다. (57)
게으름은 '자기 자신을 얕보는 정신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남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도 무시합니다. 이 무시는 말로는 겸손의 모습을 띱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저는 할 수 없어요. 저 같은 인간이 어떻게 알겠어요?" 자기를 무시하는 인간은 속으로 남도 무시하고 싶어 합니다. "너도 별수 없는 인간이잖아."란 말이 바로 그런 겁니다. "너도 별수 없잖아." "인간은 누구나 그래." 이런 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무시해서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 말에서 전 생애에 걸친 변명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58)
게으름은 자기 자신을 얕보는 정신의 행위라니. 정신이 번쩍 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갈등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니 가족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거나 아프게 할 것 같고,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자니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 것 같고. 카프카의 일기는 사실상 이런 긴장과 불안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약혼하고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타협이었습니다. (64)
실제로 우린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 중엔 알고 한 것도 있고 모르고 한 것도 있습니다 . 그런데 그것이 무언가를(가장 중요하게는 자기 자신을) 죽이기도 하고 키우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중략)
세계 속에 던져진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하는 것, 그래서 뭔가를 선택하는 게 바로 삶입니다. (69)
삶에서 선택이란 쇼핑할 자유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 안에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78)
슬프지만 어느 정도 크게 공감되는 부분. 쇼퍼홀릭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겠지.
우리는 그런 책들을 읽고 컴퓨터 앞에 앉아 당장 고쳐야 할 것, 과감히 포기해야 할 것의 목록을 만듭니다. 그런 목록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빽빽한 시간 계획표를 만들고 보람찬 방학을 보낼 것 같은 환상에 젖는 아이처럼 말이죠. (110)
우리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은 자신을 대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보는 대로 자기 자신을 봅니다. 세계를 실리 위주로 본다면 자기 자신도 실리 위주로 봅니다. 타인을 쓸모 여부로 본다면 자신에게도 그런 시선을 돌립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란 말을 자기 입 밖으로 내뱉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관점'이란 것입니다.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보는 바로 그 눈은 자신을 볼 때의 눈과 다르지 않습니다. (114)
진짜 잠재력은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입니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질문이 필요합니다. "아, 불안해, 불안해."라고 하는 것과 왜 불안한지 묻는 것은 다릅니다. "아파, 아파!"라고 하는 것과 왜 아픈지 묻는 것은 다릅니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믿음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불안 속에만 있는 것과 불안 속에만 있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다릅니다. "불안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불안하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프기 때문에"가 아니라 "아프지만 그러나"라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중략)
다른 존재가 되려면 자신의 경험을 좀 더 큰 맥락 안에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변화가 충분히 크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117)
"채송화의 다른 이름은 일락화예요. 하루만 폈다가 싹 져버려요. 시들지도 않고 깨끗하게 져요. 이 나이가 되니까 그렇게 깨끗하게 피어 살다가 지는 것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120)
일락화.
우리는 때로 남들의 이야기, 관심도 없고 심지어 경멸했던 타인의 삶 속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바로 그런 일이 책을 읽을 때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파스칼 키냐르는 <떠도는 그림자들>에서 독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독서는 참으로 이상한 경험입니다, 사람들이 독서를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요. 독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책 속의 다른 정체성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무모한 경험이니까요. 우리는 자신이 읽고 있는 책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는 채로 그 세계에 뛰어듭니다. (중략)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고,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게 됩니다. 독서란 한 사람이 다른 정체성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그 안에 자리를 잡는 행위라고 정리해 둘까요. 고대인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태아의 자세로 주검을 매장했던 것과 마찬가지지요.
저는 책이 '마치 남의 일처럼 보는 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마치 타인의 모습인 양 나타나서는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 합니다. (125)
제가 애써 묵살했던 여러 사람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목이 터져라 외치는데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아들었어도 조금밖에 반응을 하지 않으면 우린 누군가를 슬픈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겠죠. (132)
나는 학교에서 숱한 아이들을 슬프게 만든 건 아닐까?
책은 읽는 동안 뭔가 덧붙이게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겪은 일과 새로 읽은 것을 연결하게 합니다. 책은 책과 아직 책으로 쓰인 적 없는 것들(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해서)을 연결하게 합니다. (137)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것이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나 모두 당장 나와 아무 상관없는 것에 마음을 열어 보다가 자기를 만나는 경험입니다. (140)
너무 좋은 말.
그러나 공통성은 가십 거리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공통성은 같은 루이 비통 가방을 들고 다니는 데서, 같은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데서 발견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공통성은 서로를 더 깊이 더 잘 알게 만들지 않습니다. 단지 그것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않은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남과 나를 갈라놓고 구별 짓기 위해 애써 마련한 자기들만의 공통성은 제가 말하는 공통성이 아닙니다. (142)
자기 곁에 있는 세상 만물을 생생하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모든 것을 특정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무엇에도 무관심한 사람이 결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면 바로 '생생함'일 겁니다. 생생하게 본다는 것은 괴테식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본 것들을 옛날의 상념들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생하게 본다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기억, 경험, 세상을 연결시켜 본단 뜻입니다. 연결이야말로 진정한 사고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144)
능력에 대해서 다시 말해 본다면, 자신이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 보는 경험은 (그것이 한 권의 책 읽기에 불과하더라도) 무능력한 사람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 쪽으로 우릴 옮겨 놓습니다. 무능력은 재능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일을 지속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는 능력자입니다. 우연히 태어난 이 삶을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려고 하니까요. (144)
이렇게 책을 읽고 분리된 것들을 연결시키고 이를 통해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된다면 우린 심지어 다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책의 접어 놓은 페이지마다 새로운 탄생이 있습니다. 마르케스는 "인간은 어머니가 그들을 세상에 내놓은 그날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태어남을 강요하는 것은 삶이다."라고 말했는데요. 우린 사는 와중에도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145)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낀다고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선 자신이 사는 세상과 이웃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지혜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으로 세상을 새롭게 볼 때만이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146)
파스칼 키냐르의 <옛날에 대하여>란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640년 일본 나고야. 당시엔 부모가 나이 들면 산에 버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효자 아들은 차마 아버지를 버리지 못해 구덩이에 숨겨 둡니다.
포악한 원님이 아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누가 손을 대지 않아도 혼자서 울리는 북을 가지고 싶도다. 두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울리는 북을 가져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새파랗게 질린 아들은 아버지에게 달려가 묻습니다. 아버지는 큰 소리로 웃습니다. "아버지 왜 웃으세요?" 아들이 묻자 아버지는 답합니다. "이것이 우리들 인간 모두의 기원에 관한 비밀이기 때문이란다. 서로 포옹할 때 우리는 보이지 않으면서 소리를 내는 존재가 되는 거야. 서로 껴안음으로써 서로 두드리지 않아도 우리는 울리는 거란다. 포옹으로 옛날 얼굴들과 옛날 몸들이 뒤섞이고, 그렇게 해서 그것들이 재생되고, 그렇게 해서 다시 젊어지는 거야." (147)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가장 위대한 작가들과 함께 세상의 온갖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묻죠.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와 위대한 작가들의 의견이 같다면 "그렇지, 그렇지. 제 생각이 바로 그거예요."하고 자신감을 얻고 그들을 앞에 앉혀 놓고 밥이라도 한 끼 같이 먹고 싶어집니다. (150)
나도 이 느낌이 참 좋다. 내가 맞다고 확인받기 위해 매번 좋은 책을 기다린다.
우린 사방이 막힌 어딘가에 갇혀 있습니다. 숨구멍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루쉰은 자신이 책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 숨구멍을 넓혀 주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156)
나는 정확히 그 반대.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그 숨구멍을 넓혀 주기 위해서.
몇 년쯤 있다가 자기가 썼던 서평들을 보면 그것이 아무리 우스워도 이 싯구 같은 마음이 절로 들 것입니다.
너는 아까 다른 일 때문에 여기 왔었지.
그리고 지금은 가 버렸구나. 이 구석에서
어느 날 밤, 네 곁에서,
너의 부드러운 품 안에서
도데의 콩트를 읽었지. 사랑이
있던 곳이야. 잊지 마.
-세사르 바예호, <트릴세 15> (169)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주변의 소리와 향기까지 읽는 것입니다. 읽던 책을 덮을 때, 책장에는 주변의 소리와 향기까지 딸려 들어옵니다. 며칠 후 책장을 열면 그때의 소리와 향기까지 함께 펼쳐지는 것입니다. (171)
저는 밥만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사이 수많은 일을 겪었던 것입니다. 저는 죽도록 고생하고 살아온 겁니다. 저도 제가 그렇게 열심히 산 줄 몰랐습니다. 배신도 알고, 권태도 알고, 의식의 흐름도 알고, 여자의 운명이란 건 그것이 타락처럼 보일지라도 여자의 품성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된 것입니다. (185)
그때부터 정보보다는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정보로 변하는 세상이지만 저는 자신과 제가 좋아하는 것만큼은 정보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여행은 물리적 이동이 아니란 것, 결국은 정신의 여행이란 것, 그 깨달음은 제 여행기에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일상을 뚫고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는 것이었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190)
축제에 가면 우린 재미있게 놀든지 아니면 재미있게 노는 척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참을 만하다고 여기면서.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소년의 동굴처럼 내가 숨을 쉬면서 세상을 관찰할 만한 곳이 있느냐, 깊게 더 깊게 숨 쉴 만한 곳이 이 도시에 있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그곳은 장소일 수도 있고 한 권의 책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너는 나를 숨 쉬게 해.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 중 하나입니다. (200)
이 부분, 쓰고 보니 내가 오빠한테 보냈던 부분이구나. 카톡방을 뒤져보니 6.26.에 보냈네.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한다. 오빠는 나를 숨 쉬게 해.
영어로 "I miss you." 이것은 "나는 네가 그립다."는 뜻이지만 "내게서 네가 빠져 있다."는 뜻도 됩니. (중략)
저는 제게 없는 것이 미치도록 그리웠습니다. 제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일 터였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엔 하숙집에서 나와 어두운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곤 했습니다. 그럼 반드시 술 취한 학생들이 업혀 가거나 울면서 토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가로등 아래 풍경은 늘 그랬습니다. 희미한 빛 아래 누군가 울고 소리 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울고 있는 등 너머로 번번이 제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런 질문이 드는 것입니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 것인가? (210)
그런데 모방도 힘인지라 자꾸 따라 하다 보니 저도 조르바처럼 깜짝깜짝 잘 놀라는 사람이 된 듯합니다. "벚꽃이 떨어져!" "구름이 움직여!" "초승달이 떠 있어!" 암만 생각해도 참 놀라운 일 투성이입니다. (217)
"제가 읽었던 책들도, 그리고 제가 만났던 좋은 사람들의 영혼도 이렇게 제 혈관 어딘가에 흐르게 해 주십시오. 그것들을 지금 당장은 제가 불러내지 못한다고 해도 때가 되면 그것들이 '네, 저 여기 있어요.'하고 나오게 해 주십시오. 절 혼자 가게 버려두지 마세요." 그래요. 제 기도는 절 혼자 가게 버려두지 마세요, 였던 겁니다. (219)
헨리 소로는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의 정신이 얼마나 건강한지 그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책 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아주 약해져 있을 땐 귀뚜라미가 합창을 해도 들리지 않고 책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220)
저는 책에서 배운 가장 빛나는 것을 사람에게서 볼 때가 있습니다. 책에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인간 세계에 없는 것들이 아닙니다. (227)
리자베타, 이 사랑을 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선량하고 생산적인 사랑이랍니다. 동경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울한 질투와 아주 조금의 경멸과 완전하고도 순결한 천상적 행복감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세상은 우리가 사랑하지만 경멸도 하는 연인같은 존재라고 했을 때부터 사실 저는 이 이야기를 염두에 뒀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꼭 한 번 들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동경, 우울, 경멸, 순결. 우리의 사랑 안에는 이런 게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 안에는 심장과 함께 이런 게 들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저 안쪽 가슴 깊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생산적일 수 있다면 우리의 동경, 우울, 경멸, 순결이 서로 어렵게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일 겁니다. (231)
그랬다. 어느 하나라도 없을 때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던 때였다.
그렇지만 가장 콤플렉스가 강한 인간은 주어진 것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 가장 냉소적인 사람은 인간의 힘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 책은 지루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은 정말 지루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삶 자체가 지루한 사람도 존재합니다. 지루하단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성공이나 이익 말고는 추구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건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는 점입니다. (232)
방송도 제게 반복에 대해 알려 줬습니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매일 똑같은 음악을 신청합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들을 다시 듣고 싶어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계속 새로운 곡만 신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람들은 각자 비슷한 모티프, 비슷한 정서, 비슷한 음률의 음악을 반복해서 즐깁니다. (중략)
이렇게 반복되는 것은 우리에게 일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 어딘가로 옮겨 갑니다. 반복하면서 새롭게 바뀝니다. 한 스텝,다시 한 스텝, 또다시 한 스텝. 춤추듯이. 우린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주 던지는 질문 속에서 오로지 그 질문 안에서만,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하고 고유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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