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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 손원평
꼬마대장님
2019. 4. 1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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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구석에 세워 둔 작은 액자 속의 우리 셋은 변함이 없었다. 웃고 있는 모녀와 표정 없는 나. 이따금씩 엄마와 할멈이 여행을 간 건 아닐까 하는 헛된 공상을 하곤 했다. 물론 결코 끝날 수 없는 여행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내 세계의 전부였다. 하지만 할멈과 엄마의 부재로 알게 된 건 세상에 다른 사람도 존재한다는 거였다. 한 명씩 천천히, 다른 사람들이 내 인생에 등장한다. (81)
사람들은 남 얘기를 할 때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자주 잊어버린다. 말하는 사람은 작게 말한다고 생각해도, 그말들은 대부분 여과 없이 다른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108)
-친해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예를 들어, 이렇게 너와 내가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 같이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특별히 돈이 오가지 않는데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ㅆ는 것. 이런 게 친한 거란다. (130)
-내가 이런 얘기 해도 기분 나쁘지도 않냐. 어떻게 표정에 변화가 없어. 생각 안 나? 네 할머니랑 엄마 생각 안나냐고.
-생각나. 많이. 자주.
-근데 잠은 잘 와? 학교는 어떻게 다녀? 망할, 가족이 네 앞에서 피 흘리면서 죽었는데.
-그냥. 살게 돼. 나보다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도 얼마 안 돼 먹고 자고 다 할걸. 사람은 살게 돼 있는 존재니까. (136)
-그러니까 너랑 나도 언젠가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럴 거야. 어떤 방향이든. 그게 인생이니까. (151)
-지난 십육 년간 꿈쩍 않던 머리가 이제 와서 변할까요?
-예를 들어 주마. 스케이트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백날 연습을 한다고 해서 최고의 스케이터가 되지는 못할 거다. 타고난 음치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청중의 갈채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연습을 하면 말이다,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조금 나아가는 것 정도는, 서툴게나마 노래 한 소절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 그게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자 한계란다. (160)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을 어떨까. (162)
그래도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
동시에 내가 낭만과 여러 예쁜 감정들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 답이 있는게 이 세상이란다. 그러니 내가 정확한 답을 주기는 어렵지. 특히 네 나이 땐 세상이 더 수수께끼 같을 거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되는 때거든. (164)
-사랑.
-그게 뭔데?
엄마가 짓궂게 물었다.
-예쁨의 발견. (179)
참 좋은 글을 만났다.
예쁨의 발견, 그것도 끊임없이.
그래서 결국 사랑은 나를 키우기도 하는 건가?
-원래 이성에 대한 관심이 그런 거란다.
-제가 그 앨 좋아하는 걸까요?
말을 맺자마자 아차 싶었다. 심 박사는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답했다.
-글쎄. 그건 네 마음만이 알겠지.
-마음이 아니라 머리겠죠. 뭐든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린 마음이라고 얘기한단다. (198)
-너, 심장이 빨리 뛴다.
도라가 속삭인다. 도톰한 입술에서 나온 음절들이 하나씩 턱 끝에 닿아 간지러웠다. 나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 애가 뱉어 낸 호흡이 내 몸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너 지금 왜 심박 수가 높아진 건지 알아?
-아니.
-내가 너한테 가까이 다가가니까 심장이 기뻐서 박수치는 거야. (207)
콩닥콩닥하는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예쁘게 표현하다니.
나도 좋은데, 심장도 기뻐서 박수를 쳐주니 제 정신일 수가 있나. ㅠㅠ
곤이는 내게 자주 물었었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게,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어떤 느낌이냐고. 내가 설명하느라 늘 애를 먹어도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처음엔 할멈을 찌른 남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점차 다른 쪽으로 옮겨 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244)
총평.
재밌게 금세 읽었다. 조금 아쉬운건 용두사미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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