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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엽 - 흘러간, 놓아준 것들 :: 김종현

꼬마대장님 2018. 9. 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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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 아플까봐 진짜 진짜 고민하다가 구입.

다음날 바로 배송이 되어서, 수업시간 틈틈이 읽었더니 하루만에 다 읽었다.

한 자 한 자 너의 숨따라 읽느라 내가 다 저릿했어. 그치만 이제는 그리워서 슬프고 아픈 마음보다, 너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 훨씬 커.  

그리고 또 다시 드는 생각은, 이렇게나 다정한 너였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또.

 

 


하루의 끝

"향초와 진공관 전축이라... 고상한 취미네요."

"글쎄요. 어둡고 따뜻한 느낌이 나는 게 좋아요. 저에게 있어서 향초를 켜고 전축을 예열하는 건 '오늘 하루도 끝났다'라는 노골적인 의식입니다."[각주:1]

괜한 의미부여일지는 몰라도,

나돈데!! 종현아!!!!!!!!!!!!!!!!!!!!!!!!!!!!!!!

나는 집에 불이 없냐는 소릴 들을 만큼 향초만 켜고 있는데!!!!!! 그나마 켜는게 침대 옆 스탠드 정도!!!!! 이것도 할로겐 등인데!!!!!!!!

나랑 잘 맞는다 너!!!!!!!!!!!!!!!!!!!!!!!!!!!!!!!!!!!!!!!!

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 괜히 불 환하게 다 켜면, 다시 또 피곤해지고 뭔가 열심히 해야할 것만 같아서 어둡게 지내. (((합리화))) 일을 마치면 정말 네 말처럼 오늘 하루는 끝난 것 같아서 잘 쉬고 싶거든. 캔들워머 덕분에 따뜻한 향초랑 향기가 나. 노골적인 의식이라는 너의 말이 정말 좋다. 맞아 노골적이게 '나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이야'라는 걸 드러내는 것 같다. 이담에 더 큰 집에 살게 되면 대형 캔들 워머를 꼭 살거야! 그리고 꼭 욕조를 가질거야!

너도 반신욕을 좋아했구나. 향초를 좋아했구나. 진공관 전축을 좋아했구나.

진짜진짜 멀리 있어도 비슷한 사람은 이런거구나.

 

 

"건강한 외로움이라, 재밌는 표현이네요."

"그런가요? 전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위로법. 어느 날은 외롭고 어느 날은 지치고 또 어느 날은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할 수도 있죠. 물론 즐거운 날도 많지만요. 중요한 건 살아갈 날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 어떤 감정이든 중화시켜 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쁜 날이든 슬픈 날이든 전 저것들을 거르지 않아요. 복잡한 감정들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하루의 컨디션 그래프가 어느 정도 평균치로 돌아오거든요. 극적인 걸 즐기지만 시작과 끝은 중간이 좋겠죠. 기자님도 뭐든 좋아요. 저처럼 복잡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방식이든 매일 비슷하게 하루를 정리하며 마무리하면 마음이 편해요."

(중략)"감정을 중화시켜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이 공감 가요.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노래 하나 추천해 주세요. 외롭고 지치고 또 어느 날은 스스로가 바보 같고 한심하다고 느껴지는 날, 그런 날 듣기 좋은 노래로요."

"외롭고 지치고 힘들 때라... 그래요, 이 곡이 좋겠네요. 오늘 나눈 이야기하고도 통해요. 제 노래 중에 '하루의 끝'이라고 있는데요, 그걸 들어보세요. 누군가 이 노래로 하루를 마무리해 준다면 참 뿌듯할 것 같습니다."[각주:2]

여깄어!!!!!!!!!!!!!!!!!!!!!!!!!!!!!!!!!!!!!!!!!!!!!!!!!!

하루의 끝으로 하루를 얼마나 내가 마무리 많이 했는데!!!!! 응? ??

임고 준비할 때 정말 이 노래 없이, 너 없이는 그 깜깜한 기숙사 가는 길을 못 견뎠을 거야.

때때로 힘들었던 날들에 무너졌을 거야.

지금도 그래 사실. 오늘도 그렇고 종현아. 고마워.

 

 

'어느 날은 외롭고 어느 날은 지치고 또 어느 날은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할 수도 있죠.'

마치 그녀의 이야기 같았다.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할 때,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나 억울한 일에 함께 웃어주거나 화내 줄 사람이 곁에 없단 사실에 여자는 외로웠다. 또 어느 때는 붙잡는 시늉도 하지 못하고 사랑하던 이를 그냥 떠나보내 버린 자신이 너무도 바보 같고 한심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널을 뛰고 지쳐가던 여자였다. [각주:3]

 


늘 그자리에

 

당신에게

 

오랜만이에요.

예전엔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SNS다 뭐다 굳이 긴 글을 남기지 않아도 가볍게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됐으니, 세상 참 편해졌죠?

 

그만큼 우린 조금 무뎌진 것 같긴 하지만, 뭐 어때요.

가끔 이렇게 긴 글로 서로의 마음을 간지럽힐 수 있으니, 그거면 된 거죠.

 

어떻게 지내나요?

매일같이 보는 우리지만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겠지'라는 짐작으로 당신을 담아 두기엔 내 궁금증의 불길은 끝도 없이 번져서 날 열병에 시달리게 해요.

 

그러니 어서 대답해 줘요.

일상의 순간순간을 방울로 모아 나를 적셔 줘요.

나의 열벙을 당신이 잠재워 줘요.

 

물론 그 행복한 열벙에 시달리는 것도 좋지만,

시원하고 포근하게 젖어 드는 당신과의 시간도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우리는 서로를 소중하다 여기지만, 익숙해진 것인지 무뎌진 것인지, 가끔 원치 않게 상처를 주곤 하죠.

혹시 내가 줬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건 아닌가요?

그렇다면 미안해요. 눈치채지 못해서. 그러니 어서 내게 보여 줘요.

내가 낸 상처라면 나만이 고칠 수 있으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럴 거예요.

서로의 흉터를 바라보며 아파하죠.

그래도 내가 슬플까봐 흉터를 가리진 않았으면 해요.

그것마저도 우리의 일부이고 추억이고 사랑의 증거예요.

 

만약 당장 상처를 전부 보이기 민망하다면 날 꽉 껴안아 줘요.

상처를 보진 못하더라도 살갗으로 느낄 수 있도록 난 온전히 당신을 알고 싶고, 당신도 그럴 거라 믿어요.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앞으로 더 긴 시간을 보낼 거예요.

대답해 줘요.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길게도 돌려썼네요.

 

그래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언제가 당신이 내게 읽어 준 시의 한 구절처럼

당신이 필요해요.[각주:4]

"어떻게 지내?"

다정한 인사. 매일 보아도 물어보고 싶었다는 말에 괜히 혼자 울컥.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또 울컥.

 

그리고 나는 많이 민망했었나보다. 매일 그렇게 안아달라고만 했었으니. 내 마음이 들킨 것 같다. 이야기 하기 부끄럽고 속상하고 그러니까 그냥 안아주길 바랐다. 꽉 안아주길. 그거면 됐다.

 

사랑한다는 말을 길게도 돌려썼다. 진짜 이쯤에서는 읽으면서 어쩜 좋으냐며 몸서리를 쳤다. 이렇게 달콤해도 되는건지..

 

 

 


버리고 가

 

물론 남자가 인생에서 외로움을 처음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종종 찾아오는 외로움을 두 팔 벌려 환영했으나, 이전과는 달리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외로움의 노골적인 요구에 꽤 당황했다. 당장 이 외로움을 달래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영 사라지지 않고 그의 중심에 눌러 붙을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혼자라는 사실에 대한 원망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부딪혀 그의 가슴속을 헤집으며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이런 흉포한 외로움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각주:5]

 

 

그런 적당한 사람이 필요했다.

연락처를 뒤적이던 그는 잠시 멈칫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그녀의 번호. 통화 버튼을 누를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서로가 편해지기 위해 떠났는데 이제 와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자고 연락할 수는 없었다. 외로움의 젖을 먹고 자란 사랑은 보답을 모른다. 차라리 외로워 죽고 말지 배은망덕한 사랑의 부모가 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각주:6]

 

 

 


줄리엣

 

"단, 봤어?"

단이는 갸웃했다. 그는 비에 젖은 단이를 꽉 끌어안았다.

"요놈, 춘향이 데려오라고 향단이라 이름 지었더니 줄리엣을 데려왔네."[각주:7]

끄에그에개엑애ㅡ게애그ㅔ애게개ㅔㅇ개ㅓ개ㅓㅔㄱ애ㅓ게애거ㅔㅇㄱ

날 죽여라 김종현. ㅠㅠ

미쳐 응이갸베개제갸21게ㅑ21ㅜ게21ㅑㅜ레ㅜㅏㅁ너엦어ㅔㅈㅂ9ㅇ21기아.ㅁ암ㄴ ㅣ나.

정말 태생이 다정하고 달콤하구나.

 

 

 


알람시계

여자는 침대로 향했다. 내일도 일이 있으니 이제 그만 자야 한다고.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알람을 맞췄고,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랐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사를 나눌 수 있길. 그리고 그에게 이상한 꿈을 꿨다고, 우리 둘이 이별하는 말도 안되는 그런 꿈이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랐다.[각주:8]

 

 

 


내일쯤

 

어쨌든 오늘 하루 고생하신 모든 분들, 뭔가에 지쳐서 힘이 쭉 빠지신 분들.

수고하셨구요. 항상 '우리 힘냅시다. 내일은 더 좋을 거예요.'

이런 이야기로 마무리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네요.

내일쯤 힘내면 돼요. 아니 모레쯤이라도 좋습니다.

한동안 우울해도 괜찮아요.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전 여기 있을 테니까요. [각주:9]

너는 정말 다정한 사람이야. 위로를 위로 받는 사람의 시선에서 해줄 줄 아는 사람.

나도 내일쯤 힘낼게. 오늘은 조금 많이 지쳐.

 

 

 


산하엽

 

다음 날,

그는 하루 만에 5년의 시간과 기억을 비워낸 채 집으로 향했고,

그녀도 평범한, 하지만 조금은 섭섭한 하루를 시작했다. [각주:10]

평범한 하지만 조금은 섭섭한 하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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