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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아는 사람 :: 유진목
꼬마대장님
2023. 10. 2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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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의 복수는 곧 사적 복수다. 법으로는 금지된 것.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 관객들은 복수가 성공하기를 숨죽여 지켜본다. 저 자를 반드시 죽여야 해. 현실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생각이 폭발한다. (31)
어디에나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느슨하던 마음이 이내 선연해진다. 수료증이 나와서 나중에 면접같은데서 활용하기 좋을 거야!나는 왜 여기서 태어난 게 아닐까. 여기서 태어난 사람은 왜 내가 아닐까. 그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무엇에 행복하고 무엇에 불행할까. 나처럼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까. 자주 일기를 쓰고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까. 말 못할 비밀을 가졌을까.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했을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부모와는 사이가 좋을까.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45)
나를 가여워하거나 불행히 여기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좋은 것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56)
자다 깨면 나는 분노와 살의에 가득차서 소송과 관련해 해야 할 일들 그러나 하기 싫은 일들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엄두도 내질 못했다. 나는 소송의 끝인 선고를 듣자마자 하노이로 떠났다. 나는 재판에서 모두 이겼고 상대는 내게 허위적시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하노이에 도착해서 반나절을 걷다가 맨 처음 알아차린 것은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일 때문에 육 년을 시달리며 살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도 모르는 일 때문에 수천만 원을 들여가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일에 매달렸다니.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데. 나는 그저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나? 수천만 원의 돈을 들일 만큼 내게 중요한 일이었나? (63)
바딘구나 서호에 갔다가 뜨랑 띠엔 쁠라자가 있는 거리로 돌아올 때의 안도감.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분. 이제 몸을 씻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면 되는 밤의 편안한 기분을 나는 뜨랑 띠엔이라는 글자를 통해 여전히 느낄 수 있다. (67)
2021년 겨울이 떠오른다. 비나스와도 이야기하지만 종종 그때가 그립다.
저녁이 오면 사람들은 막대기를 조심스럽게 거두어들이며 빨래를 걷는다. 나는 숙소에 들어가 속옷을 빨아 발코니 난간에 널어둔다.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 빨래. 설거지. 밥 먹기. 잠 자기. 친구와 이야기하기. 고백하기. 어떤 것은 비밀로 간직하기. 울음을 참기.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기. 웃기. 속상해하기. 억울해하기. 노력하기. 포기하기. 용기를 갖기. 실패하기. 성공하기. 묵묵히 살아가기. 소리지르기. 가슴을 치기. 다독이기. 위로하기. 외면하기. 잊어버리기. 잃어버리기. 어느 날 떠올리기. 안도하기. 한숨 쉬기. 악몽에서 깨어나기. 그리하여 죽기. (80)
슬픈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슬픔은 충만한 사랑을 알아본다. 사랑을 먹고 자란 슬픔은 이내 충만해진다.
나는 슬픔이 없는 사람을 경멸한다. 아니, 슬픔을 모르는 사람을 경멸한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매사에 무례하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이 옳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픔은 중요하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무례하지 않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틀림을 가늠해본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모든 말을 내뱉지 않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적절히 타인과 거리를 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해하지 않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매사에 조심한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공감할 줄 안다. 그래서 슬픔이 있는 사람은 조용히 타인을 위로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품고 살아간다. 슬픔은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상처는 낫고 슬픔은 머문다. 우리는 우리에게 머물기로 한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슬픔은 삶을 신중하게 한다. 그것이 슬픔의 미덕이다. (92)
이 책의 정수.
살아있다는 생각도 그만 하고 싶었다. 그냥 살고 싶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잠시만이라도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살아 있고 싶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일이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말없이 그를 안아주고 싶다. (101)
도착해서는 숙소에 짐을 풀고 텅 빈 방안을 둘러보는데 슬픈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발목을 적시더니 이내 무릎까지 차오르다가 턱 아래에서 찰박였다. 떠나왔기 때문일까? 혼자 덩그러니 호텔 방에 남겨져서일까? 나는 슬픔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당장은 알 수 없는 슬픔에 대하여 곱씹어보며 그 근원을 찾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죽을 때까지? 슬픔은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르지 않는다. 까치발을 하고서 허우적거릴 만큼만 차오른다. (105)
고통은 어째서 저절로 물러나지 않을까. 이렇게 애를 써야만 저만치 물러서서 나로부터 작별을 고하는 걸까. 힘든 일들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면 안 되는 거야? 꼭 그것과 내가 분리될 수 있도록 어떤 수고로움이든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인간은 참 이상하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하게 지어진 생물이라니. 나는 불평을 하면서도 닌빈에 두고 온 나의 과거에 또 찔끔 눈물이 났다.
닌빈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운 닌빈은 나의 고통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여기에 두고 가면 돼.
넓은 땅이 내게 말해주었다. (127)
밤 사이 쏟아지던 폭우가 아침 내 이어졌다. 새벽에는 천둥 소리에 몇 번 잠에서 깨기도 하였다. 나는 딱 일주일만 더 이렇게 빗소리를 들으며 다리 사이에 이불을 둘둘 말고서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여행자만이 생각할 수 있는 천연덕스러움인지 모른다. (129)
화를 내며 사는 일의 고단함. 저기 저 사람도 화가 나 있구나. 화가 난 나는 화가 난 사람을 알아본다. (133)
불행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불행이 대단히 악질적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에서 파생된 불행이 사건의 종결과 함께 끝이 난다면 인간은 좀더 단순하고 가뿐하게 이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은 반드시 남는다. 불행을 낳은 사건이 끝난 뒤에도 불행은 남아서 마음을 갉아먹으며 자라난다. 불행은 마음속에 담겨 있는 언어를 배우고 감정을 배우고 바깥 세상을 익힌다. 성숙한 불행은 인간에게 말을 걸고 감정을 조종하고 바깥 세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속삭인다. 성숙한 불행은 환청이자 환각이 되어 나와 함께 살아간다.
불행은 내게 말한다. 저기엔 아무것도 없어. 불행은 눈앞의 것을 지워버린다. 불행은 하늘을 지우고 구름을 지우고 산을 지우고 나무를 지우고 강을 지우고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지운다. 인생이 아무 대가 없이 인간에게 주는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런 뒤 자신만을 보라고 불행은 속삭인다. (136)
유진목의 불행론.
어쩜 감쪽같이 잊고 있었을까.
언니. 내가 언니한테 전화해서 운 적이 있지 않아요?
언니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내가 너에게 전화해서 우는 날이 있을 게다.
그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42)
하노이에 가보고 싶어 졌다.
이번 겨울방학에 가는 베트남에서, 하노이는 아닐지라도, 유진목이 느꼈던 천연덕스러운 나른함을 느끼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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