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김범석
꼬마대장님
2022. 10. 25. 17:03
반응형
SMALL
기본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과거에 비해 놀라울 만큼 늘어났다. 의사로서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지연된 죽음과 늘어난 삶의 시간을 지켜보며 좀처럼 한 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삶의 시간은 더 주어지는데 이 늘어난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쓰고 있을까?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는 걸까? (6)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늘 두렵다. 한꺼번에 폭풍처럼 할 말만 쏟아내서는 안 된다. 실타래를 풀듯이 환자와 보호자가 의사의 설명을 이해했는지 확인하면서,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것은 아닌지 살핀 뒤에 그 다음 이야기를 어디까지 할지 결정하고 이야기를 해나가야 한다. 어느 순간 상대가 아직 더 이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으로 판단되면 본격적인 나쁜 소식은 다음으로 미루기도 한다. (34)
환자가 현실을 직시했으면 했다. 환자의 나이가 적든 많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일 때 남은 삶에 변화가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오랜 시간 암 환자들을 마주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었다. 그런 변화를 지켜보면서 예정된 죽음은 어쩌면 삶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61)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며 사는 건 의외로 쉽지 않다. 사회에 발 들이고 나면 먹고사는 일에 힘쓰느라, 눈앞의 현실에 치여서 스스로에 대해 물을 여력이 없다. 물어서 답을 안다고 한들 훌훌 털고 내 멋대로 살 수도 없는 일이다. 당장 오늘 뭘 먹을지, 뭘 할지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러나 어쨌든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기 마련이고,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그 같은 태도가 습관이 되어버린다. 습관은 관성이라는 가속도를 얹고 삶의 내용과 방향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62)
아버지라는 보호막 없이 홀로 선다는 것은 내게 그런 일이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하고 눈이 오면 눈을 맞아야 한다. 남들은 비 같은 것 맞지 않고 잘만 사는데 왜 나만 비를 맞아야 하느냐고 불평을 늘어놓는 것조차 사치다. 생존의 문제가 걸리면 그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비를 맞으면서도 비가 그치고 나면 해야 할 일들을, 눈앞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가, 같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곱씹어야 한다. 아버지라는 그늘 아래에 머물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던 나이에 정신 차리고 보니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내 잘못은 아니었으나 온전히 내가 견뎌내야 하는 내 몫이었다. (117)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잔인한 생도 생이어서 멈추지 않고 굴러간다는 점이다. 내 경우에도 돌아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았던 그 굴레가 어느 순간 느슨해졌고, 이제는 그 흔적을 쓸어보며 그때만큼은 아프지 않게 된었다. 수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내가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은 단 하나는 이것이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고. (119)
사회가 젊은 암 생존자에게 최소한의 꿈과 희망도 제시해줄 수 없는 걸까? (중략)
암 생존자가 160만 명이 넘어섰다. 이중 상당수는 젊은이들이다. (129)
이런 환자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봐온 극단적 장기 생존 환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랬다. (132)
'파비우스 전략'이라는 말이 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파비우스 막시무스로부터 비롯된 이 용어는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두거나 혹은 큰 피해를 입더라도 결국은 이기는 전략을 말한다. 즉 승리를 위해 지구전, 소모전을 지향하는 셈이다. (173)
어쨌든 그렇게 소모적인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친구도 점점 불편해졌다. (219)
이렇게 되면 마주하고 있는 환자의 "홍삼을 먹어도 되나요? 같은 질문은 무심하게 지나쳐야 속도를 낼 수 있고 '시속 15명'으로 내달려야 지연된 시간을 만회할 수 있다. (244)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둥 인간의 최대 수명이 120세에 도전한다는 둥 이런 내용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는데, 나는 이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다들 백 살을 살면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하는 소리일까 궁금해진다. 현실을 모르면 공허한 메아리에 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246)
몇 년째 병실에서 그런 삶이 반복되면 타인이 느끼기에는 할머니가 마치 구십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할머니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고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 다니던 날이 있었겠지만 할머니를 보살피는 이들 그 누구도 할머니의 그런 날을 알지도 못하고 떠올리지도 못한다. (중략)
미사(未死).
아직 죽지 않은 자. '살아 있는'보다 '아직 죽지 않은'편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길고도 무겁다. (248)
지나간 1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환자가 된 그 교수님이 아직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던, 여든 초반에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참 멋진 사람으로 기억했을텐데. 10년의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생각해보면 마음이 어지러웠다. 혹여 가족들도 그를 힘들게 봉양해야 했던 노인으로 기억하게 되면 어쩌나. 내가 항암치료를 너무 열심히 해서 팔십 평생 쌓아온 그의 멋진 인생을 망쳐놓은 것은 아닌가. 돌아보면 그를 치료해온 그 기간 동안 몇 번의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 돌아가셨더라면 환자나 가족들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254)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게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261)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