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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여름 2022 :: 김지연, 이미상, 함윤이

꼬마대장님 2022. 7. 1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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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 김지연

민재가 말한 평범한 삶이란 불운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살면서 한두 개의 불운이란 게 없을 수가 없으니까 그거야말로 평범했다. (25)

 

민재의 사정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은 마음, 하지만 도통 알 수 없었고 결국은 모르는 채로 있기로 한 마음까지 미선과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누군가가 감추려고 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파헤치지 않는 것이 나름의 예의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2)

 

첫째로는 민재의 의지가 가장 많이 반영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호두와 미선이 민재의 의견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경찰서에 찾아가거나 하는 대신 더는 안부를 묻지 않기로 합니다. 미선도 호두도 가끔씩은 민재가 잘 지내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그런 마음을 모두 부정해버린다고 하더라도요. 어떤 때에는 민재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서로가 다른 세계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선과 호두가 더는 민재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고 민재의 행방을 찾기를 포기해버리는 것은 민재를 위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그때 뭔가를 포기해버렸었다고 느끼기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의 선택을 했었다고 느끼는 때가 올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44)

나도 상아를 계기로, 관계에서 일정 인정하게 된 부분이 있다.
내가 오래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일인만큼, 지금 보니 그건 나를 엄청 키운 일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미선과 호두가 더는 민재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고 민재의 행방을 찾기를 포기해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는 오랫동안 시골에 살다가 서울에 와서 살고 있는데요. 서울에서 살면서 밖에 나가도 실내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딜 가나 도로가 잘 닦여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49)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 이미상

무경은 고작 열두 살의 나이에 그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더없이 간명하게 표현했다.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그것은 할 수 없는 일과 다르다. 할 수는 있다. 할 수는 있는데 정말 하기 싫다. 때려 죽여도 하기 싫다. 그러나 정말 때려 죽이려고 달려들면 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것은 가능이 아니라 선택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그 일을 대신 해준다는 것이 고모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목경과 무경의 부모가 밖으로 돌았을 때. 자식을 굶겨 죽일 만큼 정신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애들을 돌보기가 죽기보다 싫었을 때, 놓아지지 않는 정신이, 최소한의 양심이 저주처럼 느껴졌을 때, 차라리 불능이길 바랐을 때, 그럴 때 나타난다는 것이, 게다가 아무 설명 없이 생색 없이 철없는 가출의 형식으로 나타나 상대가 가장 바라는 것을 해준다는 것이 고모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좋은 마음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목경은 생각했다. 메리 포핀스처럼 날아다니며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에 빠진 사람들 앞에 짠, 나타나는 고모에게는 오만한 고약함도 있었다. 그러나 목경은 무수한 의도 중에서 실오라기 같은 악의를 건져 올리려는 결벽증을 버린 지 오래였다. 고모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사람들은 시간을 벌었다.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이, 결코 하고 싶어지지는 않겠지만, 하기 싫은 일로 바뀔 때까지 숨 돌릴 틈을 얻었다. (중략)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때려 죽여도 하기 싫은 일. 실은 너무 두려운 일. 왜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사람에게 더욱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무경은 고모의 그 일을 해주었다. 고모는 무경이 그 일을 해주었을 때 자기 안에 있는 구원을 바라는 마음을 보았다. 대체 언니는 어떤 눈을 지녔기에 그 나이에 그 마음을 봤을까, 목경은 아찔해지곤 했다. (89)

 

여하튼 셋 중 가장 중요한 것은 ①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사람의 곤경을 알아보는 고매한 눈. 고모는 오빠 부부의 곤경을 알아보고, 무경은 고모의 곤경을 알아봅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그런 눈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유전자의 신묘한 조합으로? 단순 시력으로? 그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이제야 어렴풋이 찾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설에는 그 답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96)

 

 


강가/Gangga :: 함윤이

잊으면 안 돼. 너는 내몰린 게 아니야. 너는 선택한 거야. 우리 대신에, 너 홀로 여기에서 살아가는 일을 택했어. 아냐. 부정하지 마. 화내지도 마. 비난하는 게 아니야. 네 선택을 이해해. 나중에 모른 체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야. 우리가 모두 각각의 선택을 내렸다는 것. 자신의 의지로 말이야. (127)

 

사실은 어떤 언어를 쓰든 간에 우리는 모두 타인의 말을 오해하지 않나요. 타인의 말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한 뒤, 그 해석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곤 하죠. 외국어로 나누는 대화는 그 같은 '제멋대로 해석'이 일어나는 과정을 더 정면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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