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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 최은영

꼬마대장님 2022. 6. 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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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나의 불행과 그것에 대해 토로하지 않고 견디는 내 모습이 어른스러움의 증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9)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유나가 내게 악감정을 지녔었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31)

매일 마음이 파리하게 떨리던 중학생 때의 우리들이 얼핏 떠올랐다.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흔들리는 마음들 사이에서는 나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조금 무딘 어른의 사이로 들어가고 싶었다.

 


꿈결

아무리 생생한 꿈이라고 하더라도 꿈은 깨고 나면 유리창에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녹아 흘러내렸다. (70)

 

 


숲의 끝

솔직함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인 것 같아. 내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너의 눈을 보고 말했을 거야. (82)

 

 


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처음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까. 다른 사람들과도 헤어져봤지만,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건 없더라. 다 다른 사람들이고, 다 다른 기억이니까. 새로운 경우에 적용이 안 돼."
"알아." 송문이 답했다.
"중요한 것들은 배울 수가 없나봐. 미리 대비할 수가 없나봐, 송문." 유리가 말했다. (91)

 

 


손 편지

그 광고를 보며 너의 미래는 지옥의 연장일 거라고 장담하는 어떤 목소리가 지하철 역사 안에서 울리는 것 같았어요. 너는 어른들에게 학대당하고 있어. 그런 너의 미래야 뻔하지. 넌 나중에 그 어른들 같은 사람이 될 거야. 그런 메시지를 공익광고라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세상. 가해자들에게 온전한 벌을 내릴 수도, 아이를 보호할 수도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천하에 광고하는 세상. (158)

 

할머니가 저에게 말하기 전까지는 저도 할머니가 다니는 노인정에서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 어떤 고통에도 내성이 생기고도 남은 것처럼 보이던 할머니가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보였어요. (161)

앞의 이별처럼, 우리가 배워서 미리 대비할 수 없는 게 있듯... 배웠지만 역시 대비할 수 없는 것도 있겠지.
어떤 고통에도 내성이 생길 수는 없나보다.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계피 사탕 같은 것을 건네는 모습을 떠올려봤어요. 그 무리에 끼기 위해서 틈을 찾으려 노력하는 할머니의 모습을요. 그게 잘되지 않아 낙담하고, 낙담한 채로도 멀어지지 못한 채 그 무리를 곁눈질 했을 할머니의 모습을요. 할머니 왜 그래. 왜 그러고 살아.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 짜증이 나서 소리치는 저를 할머니는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봤어요.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지를 않나봐요.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 (163)

지지난 주말에, 서울역에서 KTX를 내리고 탔던 버스가 떠올랐다.
50-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혹은 할머니) 세 분.
둘은 함께 앉았고, 가장 머리가 흰 분은 따로 앉으셨다.
처음에는 셋이 일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공교롭게 바로 뒤에 앉은 나는 그들 관계의 지형을 볼 수 있었다.
혼자 앉은 가장 머리가 희었던 할머니는 소외 당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가 소위 '소외당할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할머니가 계피 사탕 같은 것을 건네듯 공통의 이야기 거리를 마구 건네는 동안에 가장 멀리 앉은 아주머니는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다. 대꾸 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듣기 싫다'하는 퉁명함까지 보였다. 그리고 머리가 희었던 할머니는 끊임없이 나머지 둘을 곁눈질했다. 둘이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귀와 어깨가 그들을 향해 있기도 했다.
가운데 할머니는 애매한 듯 보이지만, 머리가 희었던 할머니의 편은 아닌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뒤에서 지켜보는 20대인 나는, 10대 소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급휴가

미리는 크레파스의 냄새가 좋았다. 힘을 줘서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를 그을 때의 부드러움이 좋았다. 연필의 흑연과 나무 냄새가 좋았고 수채화 물감을 팔레트에 단정하게 짤 때의 기분이 좋았다. 팔레트 위에서 붓을 움직이며 색을 섞을 때, 연필로 스케치할 때의 만족감이 좋았다. 미술학원의 고요함이 좋았고 외부의 일을 잊고 온전히 그림에만 집중하는 순간이 좋았다. 그림을 그릴 때면 비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는 날 작고 안전한 대피소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미리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그 사실을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능력을 의식할 때의 기분이 좋았다. (207)

오래 잊고 지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나를.
특히 색칠하는 류의 미술이 좋았다. 위 글처럼, 물감을 짤 때도 좋고 물감을 창가에 두어 말리고 다음 날 잘 말랐는지 확인할 때의 말랑함도 좋았다. 한~~참을 수다 떨며 집중하지 못하고 스케치를 하다가, 어느샌가 말을 잊고 집중하던 때가 떠올랐다. 말을 하지 않을수록, 그림에만 집중할수록,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림이 잘 그려졌다. 그리고 그때 내 마음은 고요했던 것 같다. 몇시간이 흘렀는 지도 모르고 그림을 그리다가, 물을 버리러 혹은 그림을 멀리서 확인하려 의자에서 일어날 때의 뻐근함. 그때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역설적으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빠 말대로 미술학원 덕에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라도 앉아 있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무얼 했을까. 무엇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난 네가 나를 용서하지 않을 줄 알았거든."
현주가 미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직도 용서받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갑작스러운 현주의 말에 미리는 먹먹해졌다. 2년 반 만에 스카이프로 통화를 했을 때 둘은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말했고 그간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눴지만 3년 전의 다툼에 대해서는 조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때의 일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상처가 될까봐 두려워서였다. (218)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 모든 사실을 알려준 건 현주였다. 현주와 함께 있을 때면 미리는 안전함을 느꼈다. 현주는 미리에게 미리의 존재 이외의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다. (221)

가장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사랑, 나도 지형이에게서 배웠다.

 

현주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미리는 벽에 부딪힌 기분을 느꼈다. 왜 자신의 마음을 현주가 정확히 알아주기를 바랐던 걸까. 왜 그토록 현주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그러면서도 미리는 한 번씩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고 현주는 그런 미리의 이야기를 어린애의 투정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미리는 어느 순간 현주로부터 자신의 한 부분을 이해받는 것을 포기했다. 최악의 인정 욕구는 자기 아픔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일지도 몰랐다. (221)

 

같이 누워서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을 들으며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 카레를 한 솥 끓여놓고 며칠을 계속 카레만 먹었던 기억, 보일러에 이상이 생겨서 추웠던 밤에 일어나 보니 현주가 자신에게 털모자를 씌워주고 목도리를 둘러준 걸 알게 된 기억, 늦게 일어나 보면 현주가 밥을 새로 짓고 국 한 냄비를 끓여놓고 갔던 기억... 그 시절이 미리에게는 또 다른 유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일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그 시절 또한 되풀이될 수 없다고 미리는 생각했다. 앞으로도 현주를 만나고 현주의 집에 와서 시간을 보내겠지만 현주의 집은 현주의 말처럼 자신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이 될 수는 없었다. 현주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고 미리는 생각했다. (230)

나는 지금 또 다른 유년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자다가 일어나보니 모기에게 물린 이마에 모기 밴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정아가 붙여준 것이다.
어느 날은 자고 일어나보니, 아침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었다. 보영이가 혹은 정아가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준비해둔 것이다.
매일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키고, 매일 배가 아플만큼 깔깔대며 웃었다.
누군가 울적해보일 때는, 꺼져 가던 체력을 모른 체하고 "나가자" 외쳤다. 아무리 어둡고 늦은 시간이어도 셋 혹은 넷일 때는 두렵지가 않았다.

유년 시절은 누구나 그렇듯, 꽤 길고 지난해서 어서 자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나도 근래에는 자꾸 자라고 싶다-지형이와 지내-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부끄러웠다.
가장 따뜻하고 안온한 유년 속에 있으면서, 다른 것을 탐했다.
물론 아이는 언제나 자라기 마련이지만, 아이일 때를 만끽해야지. 오래오래 매만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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