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은 장미 :: 은희경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지하철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은 뒤 민영은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두어 정거장쯤 지났을까. 다시 눈을 뜨더니 승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진짜 올 줄은 몰랐어." "왜?" "다들 바쁘니까." "바쁘긴 하지." 민영의 말에 애매하게 대꾸한 다음 승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뒤에 민영이 승아의 팔을 가볍게 건드렸다. "다음에 내려." 민영은 그 지역이 그리스 이민자들이 정착한 동네라 지중해식 음식점이 많다고 말한 뒤 거기서 이스트강을 건너면 맨해튼이라고 짧게 덧붙였다. (13)
"네가 진짜 올 줄은 몰랐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입 밖으로 정말로 뱉어본 적은ㅡ거의ㅡ없다.
'환영'이라는 말과 그 함의를 담은 행동이 잦아서 종종 내가 겪는 마음을 민영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공감이 됐고, 더 어딘가 부끄러웠다. '그 정도는 너끈하게 감당해야지. 그 말에 대한 책임이잖아.'하는 훈계가 벌써 마음에 일었다. 또 정아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렇게 말은 했지만, 진짜 올 줄은 몰랐지. 불편한 것도 내 마음인데 어쩌라고.'. 그래서 종종 정아한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속 시원히, 규범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말해주니까.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는 알겠는데, 내가 싫다고"같은 명쾌함.
그리고 승아는 지극히, 너무, 답답한 스타일 같다.
어떻게 둘은 친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거지. 미국과 한국이라는 그 거리만큼 서로의 모습을 반쯤 눈 감아줄 수 있어서 가능했던 일일까. 지속된 우정과 친구라는 사실이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팀원들의 커피를 사러 회사 앞 스타벅스에 나왔던 계약직 사원 승아는 진동 벨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가 그 글을 보았다. 그녀는 핸드폰 액정 속의 환영이라는 단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흔하고 일상적인 말이었지만 그때의 승아에게는 왠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승인과 호의가 담긴 유의미한 단어로 여겨졌다. 눈앞에서 문이 닫히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고 어딘가에 환영이라고 적힌 다른 문이 있다. 그것이 마치 어떤 계시처럼 느껴졌던 승아의 눈에는 그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17)
그의 상실감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해야 할 때 편하다는 이유로 가까운 사람에게 그것을 전가하는 건 안이하고 옹졸한 태도였다. (38)
그 얘기를 들은 마이크는 민영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 남자 흑인이었어?" 민영이 끝내 대답을 피했던 것은 마이크로 하여금 자신이 겪은 일을 의도적인 통계에 포함시켜 편견을 강화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마이크의 편견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그가 그 밖에 어떤 편견을 갖고 있을지 따져보게 될 테고 그 결과가 민영이 원하는 방향이 아닐까봐 불안했다. (40)
그리니치빌리지의 역 근처에서 샀던 베이글과 수프를 끝까지 챙긴 것이 그날 밤 민영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정상 행동이었다. 아마 승아는 민영에게 그런 어리석음과 흐트러짐이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45)
조금 전 집에 들어서자 마자 열려 있는 커튼을 신경질적으로 쳐다보는 민영에게 청소를 했다고 변명해야 했던 것이다. 민영은 청소도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럴 필요 없는데, 라는 말을 다소 차갑게 내뱉었다. 싱크대 선반을 열고 물컵을 꺼내려다 승아를 돌아보며 또다시 입을 열었다. "정리도 했구나. 위치가 다 바뀌었네." 그 역시 못마땅한 어조였다. (53)
으. 나는 이 부분에서 승아가 너무너무너무 답답했고, 싫어지기까지 하려고 했다.
승아의 성실함에는 어떤 종류의 충성심 같은 게 포함돼 있었고 사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게 더 근접한 이유였을 것이다. (63)
은희경은 천재인가?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한 걸까.
도대체 쟤는 왜 저러는 걸까. 물을 마시며 민영은 생각했다. 왜 저렇게 한결같이 경계라는 게 없을까. 첫날부터 그랬다.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살펴보고 뒤집어놓는 것일까. 마이크가 끝내 연락을 안 하고 출장을 떠나버려 가뜩이나 마음이 상한 민영에게 혹시 미국인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는 폼이 책꽂이에 넣어둔 사진 액자를 꺼내서 본 게 틀림없었다. 오늘 민영은 퇴근길 전철 안에서 몹시 우울했고 승아가 집에 있다면 함께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하며 기분을 풀자고 스스로를 달래던 참이었다. 그러나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덮쳐오는 열기, 난장판이 된 주방, 그리고 커튼을 열어놓은 채 브라 차림으로 잠들어 있는 승아의 모습에 자기의 공간이 훼손이라도 당한 기분이 들었고 갑자기 피로가 몰려들었다. (67)
어후..
친하다고 해서 비슷해질 필요는 없었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미소를 보내고 손을 흔들면 되었다. 민영은 그것을 납득시키면서 유지해야 하는 관계들이 피곤했고 적당한 기만으로 덮어두지 못하는 자신 역시 지겨웠다. (67)
"여기서 오래 혼자 살다보면 그냥 친절한 건지 특별한 감정인지 잘 구별 못하게 돼. 자기들끼리 선을 그어놓고 그 바깥에 있는 사람한테 친절하게 보이려는 사람들이 좀 있거든." 승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디살든 다 마찬가지 같아." 다음 순간 승아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말야.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생각해봐. 거기에 대답만 잘하면 문을 통과할 수 있어." 민영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눈치였다. 둘은 묵묵히 강 건너를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우물거렸다. (75)
장미의 이름은 장미
편안한 언어를 사용하는 대화에서는 자칫 긴장이 느슨해지고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도 노출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언어와 관계 모두에 지친 내가 결코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107)
햇살이 따가운 시각이었다. 얇은 시폰 원피스의 등과 겨드랑이가 땀에 젖기 시작했다. 격식을 차린 마마두의 재킷이 불현듯 둔하고 답답해 보였는데 그의 검은 이마에도 땀이 배어 있는 게 보였다. 이 정도 날씨는 서늘한 거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땀을 흘리는 그의 모습이 어딘지 불안하고 어리숙하게 느껴졌다. (111)
나는 또 무슨 거짓말을 했을까. 와인을 좋아한다는 말은 대체 언제 내뱉은 것일까. 상대의 질문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 나는 대체로 불분명한 어조로 예스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노라고 대꾸하면 대화가 복잡해지기 때문이었다. 마마무가 뭔가 물었을 때 잘 알아듣지 못해서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적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대화를 할 때의 나는 아무도 아니었다. 그때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익명과 일회성의 태도, 깊이 없는 친절, 단답형 문장들, 그리고 여름 시즌 동안만 유효한 임시 신분이었다. 하지만 마마두는 그런 나의 말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117)
사회 생활을 하는 우리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가씨 유정도 하지
어머니는 그 시절 이야기를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고생담은 물론이고 옛날이야기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 살아봤다고 해서 다 옛날을 잘 아는 건 아니야'라든가 '사람은 자신의 현재에 살아야지'가 입버릇이었다. (225)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까탈스러워요." 형은 어머니가 보통의 어머니답지 않은 말을 할 때면 곧잘 짜증을 냈다. "그래봤자 할머니는 할머니잖아요." 어머니는 곧바로 대꾸했다. "내가 할머니지만, 그 사람들이 아는 그 할머니는 아니야. 그러니까 아는 척 좀 하지 말라는 거야." 어머니 말이 맞았다. 어머니의 서사는 그 누구의 서사와도 다른 게 당연했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는 어머니의 불경에 끼워져 있던 편지가 떠올랐다. (230)
이 단편을 읽으면서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아는 그 할머니가 아닌 할머니들의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사람들이 아는 그 누구'로 납작하게 이해되기를 바라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납작하고 아주 간편하게 이해해버리는 군을 떠올려보는 것은 유의미해진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일이란 스스로 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책들과 글들은 많은 도움을 준다.
과민함은 콤플렉스의 표현이기도 하니까.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