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 박혜란
그렇다. 손주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 욕심이 안 난다. 그저 아무 탈 없이 착하고 튼튼하게 자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중에 커서는 제 좋아하는 일을 얻어 밥벌이하면서 그럭저럭 살면 제일이지 싶다. 어렸을 때부터 영재 소릴 듣고 뭐든지 뛰어나서 늘 1등을 놓치지 않아 돈과 지위와 명예를 거머쥐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따위는 애당초 안 든다. 그런 사람 되면 뭐하겠노? 밥 세끼 먹는 건 마찬가질 텐데 싶어서다. (7)
할머니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본다.
실은 우리 반 아이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할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보자면... 등교를 하고 하교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대견할 뿐이다.
그리고 그럴 때 진정으로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짧은 내 경험상.)
미숙했던 엄마의 뒤늦은 후회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고 난 젊은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간곡히 당부한다. 이만큼 살아 보니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은 정말 잠깐이더라. 인생에 그토록 재미있고 보람찬 시간을 또다시 오지 않는 것 같더라. 그러니 그렇게 비장한 자세를 잡지 말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마음 편하게, 쉽게, 재미있게 그 일을 즐겨라.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부모 마음으로 키우지 말고 손주 보듯 해라. 그러면 만사형통이려니. (9)
날이 갈수록 내 눈에 점점 어리게만 보이는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그저 아이들을 닦달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그들은 아이들에 대해 걱정이 많아도 너무 많다.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의 무게에 짓눌려 아이의 현재를 놓치고 있을뿐더러 아이 키우는 즐거움은 아예 사치품으로 멀찍이 밀어 놓는 것만 같다. (10)
엄마들의 최대 불안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가 엄마를 잘못 만나서 제대로 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다. 다른 엄마들은 다 '별 고민 없이' 하는 엄마 노릇을 별로 잘나지도 않은 자신만 왜 복잡하게 생각할까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다가 결국 다른 엄마들을 따라간다.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중략) "아이들 자유롭게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어요. 그러다간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게 뻔하니까 그렇죠."
그러나 땅을 친 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엄마들은 대부분 아이를 자유롭게 키운 이들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퍼부으며 다그쳐 키운 이들이라는 걸 지금 젊은 엄마들은 상상이나 할까. (25)
나는 평소 '여자는 강하지만 엄마는 약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여자들 하나하나는 정말 똑똑하지만 일단 엄마가 되면 순식간에 바보가 되는 것 같아서. (33)
ㅠㅠㅠ 맞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게 머선129................................
솔직히 자식을 내 뜻대로 할 수 있으리라고 감히 생각하다니 참 용감한 엄마들이구나 싶다. 우선, 자식은 자식 뜻대로 자랄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엄마는 그저 그 뒷바라지나 해야 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엄마는 자식의 몸을 낳아 주었을 뿐이지 그렇다고 자식의 뜻까지 낳아 준 건 아니다. 자식도 자기만의 뜻을 가진 존재다. 자식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엄마 뜻대로 키우려는 건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데서 오는 발상이다.
다음으로, 도대체 부모의 뜻은 항상 믿을 만하고 또 바람직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세상을 먼저 살아 보고 단맛 쓴맛을 모두 맛봤다고 세상의 모든 맛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자식의 입맛에 맞다는 보장도 없다. 몸에 좋은 음식도 강제로 먹이면 체하게 마련이다. 자식에게도 골라 먹을 권리가 있다. (43)
엄마의 뜻과는 달리 엄마의 뜻에 맹종하는 자식일수록 점점 더 엄마에게 큰 짐이 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늘 엄마의 뜻을 살피며 착한 아이로 살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뜻은 아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은 나중에 결혼상대를 고를 때도 엄마가 골라 줘야 하지 않을까. 혹시 부부간 갈등이 생겼을 때도 스스로 해결할 시도조차 해 보지 않고 무조건 엄마를 불러 대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고 해서 하는 걱정이다. '요즘 애들'은 '요즘 엄마들'이 키운 결과물이다. (45)
아이가 내 뜻대로 된다고 자랑 말고, 아이가 내 뜻대로 안 된다고 걱정 말라. 반대로 아이가 내 뜻대로 된다면 걱정하고, 아이가 내 뜻대로 안 되면 안심하라. 가장 걱정해야 할 문제는 아이에게 뜻이 없다는 거다. (47)
크.. 진짜 중요한 말이다.
아들이고 딸이고 지나친 밀착은 서로를 파괴할 뿐이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밀어내는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70)
부모의 기대를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반발하는 아이에게 부모는 '이게 다 나를 위해선지 아냐? 너를 위해선데 그걸 몰라?'라며 호통을 친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부모의 기대는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아이는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몰라서,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몰라서 반항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72)
자녀에게 인색한 게 무슨 부모냐고? 정말 자녀를 위하는 부모는 나중에 저 살기도 바쁜 자녀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는 부모다. 지금 청장년층은 평균적으로 아흔 살까지 산다는데 예순 살 자녀들로부터 부양받기를 원하는가. (80)
아이가 아무리 상냥하고 인사성 바르고 성실하고 정직해도 뛰어난 성적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 않으면 엄마는 못마땅하기만 하다. 오히려 속으로 성격은 조금 못돼도 좋으니 더 똑똑해지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이미 훌륭한 인품을 가진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84)
그러니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다는 것은 바로 아이가 상냥하고, 인사성 바르고, 성실하고 정직하면서도 늘 당당하게 키우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당당하게 자란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위치에 있든 결코 스스로를 찌질하게 산다고 비하하지 않는다. 또 출세한 사람 앞에서 기죽지 않으며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도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다. (85)
아이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안다. 어렸을 때 당당한 아이는 엄마가 훼방만 놓지 않는다면 커서도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인품도 좋은 데다 당당하기까지 하다면 그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꼭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훌륭하게 사는 건 아니잖은가. 엄마도 나이가 들수록 새록새록 깨닫는 것 아닌가. (87)
정말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면 엄마는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지지해야 한다. (89)
여기서 냉정한 처방을 내리자면, 거리 두기의 가장 성공적인 방법은 가슴이 좀 아프겠지만 아이를 내게 온 손님으로 생각하고 대하라는 것이다. 아이를 손님으로 생각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제까지 아이 때문에 불안하고 속상했던 일들이 일시에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상태를 맛볼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90)
마지막으로 손님과의 관계는 떠나기 전이나 떠난 후에도 내가 어떤 주인노릇을 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내가 손님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했다면 그는 내게 늘 고마워하고 떠난 후에도 날 잊지 않고 자주 찾아올 것이다. 일단 떠난 후에도 관계가 지속되느냐 마느냐는 내 쪽에서 억지로 부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혹시 예의상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 보고 싶어 찾아오는 것은 영 다른 차원이다. 계속 좋은 관계를 이어 가기 위해서라도 손님에게 성의껏 대접하되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94
!!!!!!!!
좋은 집 주인이 되는 것.
보고 싶어 찾아오게 만드는 것.
아마 모든 관계의 바탕이지 않을까.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엄마는 인품 좋은 엄마다. 아이의 성적이 아니라 아이의 인품이 곧 엄마의 인품이라는 데 선뜻 한 표를 던지겠다. 물론 나무랄 데 없는 인품을 가진 엄마 밑에서도 끔찍한 범죄자가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경우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엄마가 인품이 좋으면 아이들도 그대로 닮는다는 게 상식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거의 그렇다. 인품이 좋지 않은 엄마를 만나면 나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으련만 공연히 그 집 아이들이 걱정되고, 인품이 좋은 아이를 만나면 저절로 그 엄마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꼭 만나 보고 싶어진다. (103)
뭐니뭐니 해도 아이의 적성을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온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맘 편하게 놀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주는 것이다. 꽉 짜인 스케쥴에 익숙한 부모들은 아이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온종일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뒹굴뒹굴 하는 모습을 못 참는다.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게을러터진 아이가 커서 뭘 할 수 있을까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하지만 뭐든지 무한정 하다 보면 결국 지치게 마련이다. 노는 것도 마찬가지다. 암만 놀아도 부모가 아무 잔소리도 안 하면 노는 것도 시큰둥해진다. 자연히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아 머리를 굴리게 된다. 그러니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아이가 혼자 클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고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110)
어렸을 땐 엄마 말 잘 듣고 순진하기만 했던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가면서부터 슬슬 달라져 가면 엄마는 대뜸 아이가 친구를 잘못 사귀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사춘기의 특성을 이해하려거나 일방통행적인 엄마의 육아법에 대해 반성하려는 노력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무조건 엄마가 잠시 방심한 사이 나쁜 친구들이 접근해 순진한 아이에게 물을 들였다고 원망하기 바쁘다. 친구관계라는 것이 어느 한 쪽에서 마음만 먹으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116)
ㅎㅎ 말모........ㅎ
그들은 이런 가정(생활 형편이 어려운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 편부 편모의 아이, 조손가정의 아이, 그리고 맞벌이 부모의 아이)의 아이들이 훨씬 더 빨리 철이 들고 훨씬 더 빨리 자립심을 키운다는 긍정적인 면은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117)
이 부분을 읽는데, 아주 어렴풋하게 초등학생 때 내가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로 나도 여러 친구들이랑 지냈지만, 어떤 가정의 친구에게서 쾅 쾅 쾅ㅡ하고 새로운 충격을 받았던 게 떠오른다. 예컨대 자기 밥은 자기가 해 먹는 일, 부모가 없는 집에서 지내는 일(이것은 다시 말해 하교 후의 시간을 모조리 마음대로 운용한다는 것과 같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닌 두어개쯤 더 아는 일, 컴퓨터나 티비를 질리도록 보는 일, 부모의 심부름으로 무언가를 사고 대신 맡기고 하는 일(이것은 어른과 아이의 일이 나눠져있지 않다는 것과 같다)... 전부 충격이었고, 경탄스러웠다. 내가 몰랐던 일과 세계가 있었음을 아주 은밀하고도 차츰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을 몇쯤 거치고 나서야, 나는 정말로 알을 깼던 것 같다.그때부터였겠지, 정말 궁금한 게 많았다. 내가 모르는 것을 빨리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몰랐던 것을 지금의 나이에도 모를 때, 사회는 '대책없다'거나 '세상 물정 모른다'고 해버린다. 알려준 적도 없으면서. 그리고 나도 비겁하게 누군가를 속단해버린다. 어쩌다 운좋게 편승했던 거면서...
"나는 어떻게 살든 내 아이만은 행복하게 살게 해야지." 하지만 이 에상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믿음직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면 아이는 과연 누구로부터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선천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형제 간에도 누구는 늘 행복해하는 반면 누구는 늘 불평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행복한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대부분 행복도가 비슷하다는 게 상식이다. 왜냐하면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가정에서도 늘 행복한 웃음을 달고 사는 아이가 있고 풍요한 가정에서도 늘 찌푸린 얼굴로 다니는 아이가 있다. 둘 다 부모에게서 배운 것이다. (146)
시대가 이렇게 변했는데도 오히려 젊은 여성들은 여전히 나이에 스스로를 옭아매기 일쑤이다. 한 해가 저물 무렵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스물아홉에 다 산 것처럼 한숨 쉬는 글들이 넘쳐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더하다. 아이가 생기면서 그들은 이제부터 자신의 인생은 끝났고 앞으로 엄마로서의 인생만 남았다고 푸념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좋은 엄마로서의 자세를 가다듬겠다는 다짐이지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제부터는 기나긴 인생을 엄마라는 이름에 묻어가겠다는 자기 포기선언이다. (153)
누구나 알다시피 차라리 엄마에게 대드는 아이는 건강한 아이다. 엄마의 위세에 짓눌려 아예 기가 꺾여 버린 아이는 좀처럼 자존감을 되살리기 힘들다. 그런데도 엄마들은 단지 자기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는 이유로 대드는 아이에게 더 화를 낸다. 그때부터 아이와의 소모적인 기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제 엄마의 목표는 아이를 자극시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로지 엄마에게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아이의 기를 초전박살 내는 데 집중한다. (164)
나도 조심해야 할 부분.
아이들을 대할 때, 정말 내가 기를 초전박살 내기 위해 화를 내는 게 아닌가 늘 되물을 것.
여기서도 금기사항은, 절대 남과 비교하지 말 것!이다. 친구들이나 예전 동료들이 어느 만큼 가 있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갔으니 나는 나의 길을 가면 그뿐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부럽게만 보이는 그들의 삶에도 얼마나 많은 걸림돌이 있었겠는가. (167)
나 역시 겉이 풍요로워질수록 속은 비어 가는 걸 느낀다. 많이 먹을수록 먹고 싶은 것들이 늘어난다. 온갖 성인병을 앓으면서도 식탐을 끊기가 너무 힘들다. 요즘 엄마들도 겉은 나날이 세련되어 가는데 속은 갈수록 강퍅해지는 것만 같다. 내 아이 챙기기에 급급해 다른 아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176)
문제청소년 뒤에는 반드시 문제부모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들은 문제청소년은 없다, 문제부모가 있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177)
모성도 연습니다. 노력한 만큼 커진다. (178)
그런 것 같다.
내가 아이들을 대할 때 연습하던 모성이 점점 자라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게 되어서 어디에나 쉽게 확장이 된다.
걸핏하면 아이를 다른 형제나 친구네 아이와 비교하는 버릇은 백해무익한 행동이다. 그보다는 내 아이만의 장점을 찾아서 칭찬하고 키워 주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다. 정 비교하고 싶다면 내 아이와 친구네 아이를 비교하지 말고 나의 육아법과 친구의 육아법을 비교해 볼 일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 나빠지겠지만. (20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심 빵터졌다. 아주 좋은 논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린이 행복 선언>
1. 마음껏 신나게 놀고 나면 행복해요. 놀 곳과 놀 시간을 주세요.
2. 포근하게 안아 주면 행복해요. 많이많이 안아 주세요.
3. 하늘을 보고 꽃을 보면 행복해요. 자연과 더불어 살게 해 주세요.
4.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해요. 좋은 먹거리를 주세요.
5. 책을 읽어 줄 때 행복해요. 재미있는 책을 읽어 주세요.
6. 어른들이 기다려 줄 때 행복해요. 잘 못하고 느려도 기다려 주세요.
7. 제 말을 귀담아 줄 때 행복해요. 제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8. 제 힘으로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해요. 저 혼자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9. 어른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해요. 모두 함께 행복하게 해 주세요.
10. 다른 아이들이 행복해야 저도 행복해요. 모든 아이들이 저처럼 행복하게 해 주세요. (209)
큰애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난 예비며느리 면전에서 뭐 하러 결혼하느냐고 했는데 며느리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내 아들보다 훨씬 더 공부에 적성과 능력이 있어 보이는 며느릿감이 결혼 후 얼마나 큰 걸림돌에 부딪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237)
하지만 솔직히 난 이만한 출생률도 놀랍기만 하다. 아니 전후좌우를 둘러봐도 남성들보다 한결 뛰어난 여성들 천지인데 그 많은 여성들이 어떻게 이렇게 아이 키우기 어려운 나라에서 감히 아이들을 쑹쑹 낳는 거지? 겉만 똑똑해 보이는 바보들인가, 아니면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불멸의 영웅들인가.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