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가들 :: 김지수
저는 독자들이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대하는 이런 식의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무언가를 귀히 여겨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건 얼마나 어여쁜 마음입니까. 좋은 인생에 대한 예우, 밑줄 그어 듣는 그 경청의 반듯함, 서로 덕담을 나누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질 때의 넉넉함,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어른들이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 같은 것들. 제각기 떠났던 식구들이 저녁밥 짓는 냄새에 이끌려 돌아오듯, 그렇게 어른의 아름다운 선창에 하나둘씩 터 잡고 모여 앉는 풍경이 좋았습니다. (5)
그리하여 선택의 누적분으로 모인 인터뷰 모음은, 집단지성의 모양을 띤 하나의 인생이자 발굴된 인격으로 다가옵니다. 신기한 일은, 사람에게도 타고난 기운이 있듯 한 사람의 이야기도 세상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기세가 있고 또한 성장한다는 거지요. (9)
눈 앞에 주어진 시간을 잘 붙들어요 :: 배우 김혜자
내 귀중한 걸 희생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어요. 그게 등가의 법칙이에요. 운 좋은 사람? 운 좋았다 해도 노력 안 하면 사라져요. 나는 이해력도 부족한 사람이라 열심히 안 하면 할 수가 없었어요. 오죽하면 꿈에서도 대본이 나왔어요. (20)
어쩌면 그 힘으로 선생은 드라마에서도 자기 인생에서도 주인공으로 살아온 게 아닌지요?
그것도 얼마나 감사해요. 날개는 누가 달아 주지 않아요. 내 살을 뚫고 나오는 거죠. 등가교환과 비슷한 말이야. 깃털이 살을 뚫을 때 얼마나 아프겠어요. (22)
사소한 즐거움이 있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아요 :: 정신의학자 이근후
손주들과 잘 통하시는 모양입니다. 노인이 청년에게 줄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경청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선생 자신도 늘 부드럽게 맞장구를 쳐 주셨던 외할머니와의 대화를 아름답게 기억하신다고요.
맞습니다. 대개 노인이 되면 성장기에 학습한 교양과 습관이 세포 조각 떨어져 나가듯 휘발돼요. 오롯이 남는 건 부모에게 받은 DNA와 기질, 어린 시절의 가정교육뿐이죠.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그렇게 중간 교양이 사라져 버리면 뭐가 남겠어요? 고리타분한 어린아이죠.
그 모습을 피하려면 노인은 노인이 되기 전부터 젊은이에게 얘기 듣는 걸 즐겨야 합니다. 하지만 경청은 무한한 자제력을 필요로 해요. 그 노력을 놓치니 어디 가서 마이크 받으면 안 놓고 한 시간을 횡설수설합니다. 시간은 짧게 느껴지지, 머릿속엔 이 얘기 저 얘기 떠오르지... 그 두서없는 얘기를 듣느라 젊은이들도 인내력 테스트를 받는 것예요. (41)
성공은 높이보다 넓이예요 :: 댄서 리아킴
제가 2006년 스트리트 댄스 로킹 부문 세계 대회 1위를 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 더 큰 슬럼프를 겪었죠. 그때 위아래의 개념이 무너졌어요. 정상까지 올라가면 어느 순간 내려갈 일만 남더라고요. 성공은 높이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많은 걸 넓이로 느껴요. 많은 사람과 연결되면서 제 경험도 그만큼 넓어지고 다양해졌거든요. (60)
매일 유튜브 영상을 올리는 게 버겁진 않습니까?
'매일매일'이 바로 성공 비결이에요. 꾸준히 빠지지 않고 올려야 구독자들에게 신뢰를 얻어요. (67)
공이 오면 공을 친다, 거기에만 집중하세요 :: 야구선수 이승엽
'왜 내가 이런 불행에 처했나' 자책하면 미궁에만 빠져요. 단순하게 '공이 오면 공을 친다' 그거에만 집중하면 훨씬 수월해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준비는 힘들게, 승부는 편하게'예요. (82)
여전히 야구를 잘 모르는 나로서도 유명한 야구 선수 이승엽.
이 부분을 읽고는 그가 왜 이승엽이며, 왜 이승엽이 그렇게 유명한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우리는 지나치게 복잡하-고자 노력한-다.
공이 오면 공을 친다는 단순함이 어쩌면 지지부진한 굴레를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일진대.
라이벌은 누구였나요?
저 자신이요. 오로지 저의 나태와 자만과 싸웠습니다. (90)
그렇다.
누구도 라이벌이 될 수가 없지, 정말.
난 매번 지금이 제일 행복해, 그렇게 노력하는 거지 :: 배우 신구
최고의 연기자는 최고의 성실을 가진 자예요. 재능은 큰 차이가 없어. 시간이 지나면 성실하게 노력한 사람이 남아요. 재능이 부족한 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거든. 반면 재능 믿고 까불다가 사라진 사람들을 나는 숱하게 봤어요. (102)
어른, 선배, 노인으로서의 신구 말을 되새겨본다.
그냥 나온 말도 아닐 테고, 의미 없는 말도 아닐 테다.
최고의 무엇은 최고의 성실을 가진 자라는 것을 나도 시간이 흐를수록 여실히 느끼니까.
나를 위해 그렸을 뿐인데 수십만 명이 웃어 주네요 ::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
혼날까 걱정만 했죠. 자주 혼났으면 혼나도 별거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혼이 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무서웠어요. (142)
인터뷰에서는 조금 다른 맥락이었는데, 내게는 이 부분이 좋았다.
'혼'의 자리에 '실패' 혹은 '좌절'을 두어도 될 것 같아서.
'실패'할까 걱정만 했죠. 자주 '실패'했으면 '실패'해도 별거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무서웠어요.
그렇게 무서워하다가 '성공'의 경험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실패'가 별 것 아니라는 경험은 덤.
올해 5월과 10월에 도전을 해보니 내가 느낀 바도 비슷하다.
결과가 무엇이든 나는 죽 죽, 뚜벅 뚜벅,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결국 멈추지 않는 사람이 멀리가게 되어있으므로.
허송세월 쌓여 문득 좋은 게 나와요 :: 가수 이적
그거 아세요? 아이들도 자기를 독립적으로 인정한다는 느낌이 들면 금방 캐치하고 뿌듯해해요. 방치하고는 달라요. 저는 딸들도 그렇게 성실하게 존중해 줘요. 어려운 말도 최선을 다해 설명해 가면서요. 아이가 자랄수록 부모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아요. 부모는 유전자를 전달하는 통로, 잠깐의 대리인이니 부디 저는 아이의 발목이나 잡지 말자는 거죠. (156)
온 마음으로 감탄하고 감사하세요 :: 화가 황규백
다자이 오사무는 다섯 살 때까지 유모가 엄마인 줄 알고 컸어요. 서른 몇 살에 기차와 버스를 타고 유모를 찾아 쓰가루 지방으로 가요. 30년 만에 학교 운동장에서 유모를 만나 털썩 주저앉아요. "슈짱!" 그러고는 말을 못 해. 너무 반가우면 말을 잊어요. 나는 그 대목이 너무 좋아. '아! 평화라는 게 이런 건가.' 오사무는 이 몇 줄을 위해 몇 백 장의 원고지를 버렸을 거야. 그게 유명해져 쓰가루엔 유모와 아이의 동상이 생겼어요. 동감, 좋은 느낌. 살면서 그걸 느낄 수 있으면 충분해요. (173)
왜....... 가운데가 사라졌지.................. ㅠㅠ분명 저장했는데...... 흑흑흑.
낙관론자들은 왜 과소평가되는 걸까요?
낙관론자들은 종종 핵심 이슈를 꿰뚫어 볼 수 없는 순진한 이상주의자로 폄하돼요. 하지만 진정한 낙관주의자들은 모든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요. 어떤 생태적인 재앙과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세계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상상의 능력이에요. 낙관론자들은 세계를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실제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죠. 낙관론자들의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거대한 인내입니다. (227)
아이들은 그들의 외모와 능력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좌절에 처했을 때 어린 시절의 칭찬은 그들의 회복탄력성에 큰 도움을 줍니다. 무엇보다 자긍심 가득한 눈으로 표현하는 부모의 사랑의 언어는 훗날 아이들에게 의지할 만한 보험이 됩니다. (232)
마지막으로 여전히 비관적 태도를 유지하는 게 더 견딜만 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혼율이 높다고, 폐업률이 높다고 결혼이나 사업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시도하는 게 더 낫습니다. 사실 제대로 진화한 낙관주의자는 인간의 삶이 연약하고 깨어지기 쉬우며 삶엔 고통이 따르고 그 고통이 매우 빈번하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다만 그중 스스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문제는 어디서든 돌출될 수 있어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난관을 보지 말과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기회를 보세요. (236)
날씨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게 나의 감정입니다 ::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해 준 말은 뭐죠?
말해 주지 않았어요. (웃음) 묻고 들어 줬죠. 요즘 네 마음이 어떠니? 어떻게 지내니? 불편한 건 없니? (246)
진단 해악이 미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우울증 진단은 어떻게 내려져야 합니까?
저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없어지길 바라요. 우울은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에요. 모든 인간은 그 위의 개별적인 존재고 감정은 날씨처럼 움직이죠. 존재의 개별성에 주목하지 않으니 소외가 생기는데, 의사들은 핵심을 외면하고 세로토닌 약만 처방해 줘요. (252)
내 마음을 궁금해하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은 치유된다고 했는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장 주변에 없더라도 그런 존재를 떠올리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일어나요. 자각하는 게 중요하죠. 만약 없다면 내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세요. 보통은 내가 가장 먼저 자신에게 가혹한 타자가 되기 쉬워요. 스스로 '왜 슬프지?' '그랬구나' 묻고 들어주세요. 또 하나의 방법은 내가 타자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는 겁니다. 내가 타인의 마음을 궁금해하면 빠르게 보상이 옵니다. (255)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 가톨릭 신부 최대환
신학생 시절,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땐 '하나님이 날 미워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지요. (웃음) 그러다 알게 됐어요. 신은 인간의 모든 선택을 사랑하신다는 걸. 다만 그 순간 더 좋은 게 있을 뿐이지요. (261)
겨울에는 벌거벗은 마음으로 이웃의 얼어붙은 몸을 볼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단순히 음악이 아닌 묵상이죠. 그 음악을 작곡할 때 슈베르트가 쓴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나를 멸시한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마음에 품고 먼 길을 돌아다녔다." (266)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을 믿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늘 오는 봄이지만, 봄을 기다린다가 아니라 믿어야 한다고 해서 기뻤습니다.
빌 에반스가 말년에 녹음해서 유작으로 나온 앨범이 <당신은 봄을 믿어야 해요You Must Believe in Spring>예요.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알코올중독, 마약, 형의 자살 등으로 고통이 심했어요. 그런데 오십에 약물중독 후유증으로 죽어 가면서 그 곡을 녹음했어요. 겨울의 끝을 살다 보면 봄이 안 올 것 같지만, 봄을 믿어야 한다고요. (266)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한나 아렌트가 주장하는 '악의 평범성'이 일상이 된 듯합니다. 끔찍한 악행들이 결국 공감 능력 부족이라는 평범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말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도 제시했지만, '인간의 탄생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어요.
'탄생성'이라니 무슨 말이지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전에 쓴 <인간의 조건>에서 한나 아렌트는 인간은 우연과 필멸의 한계 속에서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썼어요. 탄생성은 시작의 능력이에요. 그게 가능한 건 우리에게 용서의 능력과 약속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쉽지는 않아요.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게 저도 힘듭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용서를 선택해야죠. 약속도 그래요. 헛된 약속은 부질없지만 나에 대해, 미래에 대해 약속하는 사람에겐 늘 희망이 있습니다. (267)
슬픔과 기쁨이 붙어서 가는 게 인생입니다. 들어가보면 성공한 사람도 슬픔이 있고 비참해 뵈는 사람도 기쁨이 있어요. 그 비율만 약간 다를 뿐. 간혹 슬픔이 옮을가 봐 비참한 사람을 피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하지만 슬픔 안에서 연대할 수 있으면 인생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예요. (272)
늘 사람들 곁에서 봉사하며 살지만, 외로움이 찾아올 때도 있겠지요?
신부는 자기 집이 없어요. 평생 떠돌며 사택 생활을 합니다. 그래도 보통 사람보다는 덜 외로워요. 가족과 살아도 소외감이 드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가족처럼 친밀하진 않지만,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유사 가족이 많습니다. 교구 신부는 우정을 맺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요. 현대인들은 외롭긴 싫어하는데 우정 능력은 더 떨어져서 안타깝죠. (275)
오.
"우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겠다.
친구와 나누는 끈끈함만이 우정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사랑을 우정이라 칭할 수도 있겠구나.
정말로 현대인에게는 우정 능력이 중요해보인다.
그리고 그럴 때 뿌리 깊은 외로움은 제 힘을 발휘하기 어렵겠고.
아 중요하다 우정!
늘 다정씨랑 대화하며 우정, 친구가 중요하다 그리 말했으면서...
"우정" !!!!!!!
나의 죽음을 나의 이야기로 만드세요 : 법의학자 유성호
마지막으로 묻지요. 품위 있는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죽음 앞에서 두려워 벌벌 떨지 않는 거죠. 죽음이 삶의 마지막 과정이라는 걸 담담하게 인정하는 겁니다. 태어날 때 축복받고 웃은 것처럼, 죽을 때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즐겁게 마무리하는 거죠. 급작스럽게 죽을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고, 주변에 사랑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면서요. (316)
내 버킷리스트.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두려워 벌벌 떨지 않고 담담하게 인정하며 즐겁게 마무리하기.
될까?
생각만으로도 어느 조금은 두렵지만, 그래도 마지막 해야 할 일이라면.
유성호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는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최근 자발적인 치료 중단을 하셨다.
갑자기, 수술을 앞 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의 결정에 가족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다. 당연하게도.
여러 다른 생각 중 하나의 내 생각으로써, 나는 할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한다.
정말로 이들 모두 중에 할아버지 자신 만큼 고민하고, 책임을 감내한 선택이 있을까?
대신 아파하고, 대신 책임지어 줄 수 없으면 타인으로서 할 일은 오직 하나다.
그 선택을 존중하는 일.
최선도 최악도 아닌 이것만이 가족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일 테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 문학평론가 이어령
요즘엔 탄생 자체를 비극으로 보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내 의지로 세상에 나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래서 안 태어나는 게 행복했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났으니 빨리 사라지는 게 낫겠다, 이렇게 반출생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건 무의미해. 제일 쉬운 게 부정이죠. 긍정이 어렵죠. (326)
하지만 프로이트는 배 안의 세계를 몰랐어요. 태어난 후부터 트라우마를 적용했는데, 기실 태아 때 더 많은 트라우마가 생긴다는 걸 그는 몰랐지.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사람의 후손 중 많은 사람이 폐소공포증을 앓았어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유전은 내 조상의 정확한 이력서예요. (327)
섬뜩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혼자라는 거였어요. 누구도 그 길에 동행하지 못하니까요. 다행히 그때 또 새롭게 깨달아지는 것이 있어요. 젊은 날 인식이 팽팽할 땐 몰랐던 것.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이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 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336)
공의보다 공감이라는 말이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상품 경제 시대에서 멀리 왔어요. AI시대엔 생산량이 이미 오버야. 물질이 자본이던 시대는 물 건너갔어요. 공감이 가장 큰 자본이지요. BTS를 보러 왜 서양인들이 텐트 치고 노숙을 하겠어요? 아름다운 소리를 좇아온 거죠. 그게 물건 장사한 건가? 마음 장사한 거예요.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즐거움, 공감이 사람을 불러 모은 거지요. (336)
지성의 종착점은 영성이에요. 지성은 자기가 한 것이지만, 영성은 오로지 받았다는 깨달음이에요. (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