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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카인드 :: 뤼트허르 브레흐만

꼬마대장님 2021. 9. 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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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대중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이 제시한 이론은 현실에서 검증한 결과 형편없이 빗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위기는 사람들의 가장 나쁜 면이 아니라 좋은 면을 부각시켰다. 어쨌든 영국인들은 문명의 사다리에서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어느 미국 기자는 자신의 일기장에 "악몽과도 같은 조건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보여준 용기와 유머, 친절함은 계속해서 놀라움을 안겨준다"라고 적었다. (23)

 

인간은 본성 자체가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며 공황 상태에 쉽게 빠진다는 신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네덜란드의 동물학자 프란스 드발이 '껍데기 이론Venner theory'이라고 즐겨부르는 것이다. 문명이란 아주 가벼운 도발에도 갈라져버리는 얄팍한 껍데기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현실에서는 그 반대가 진실이다. 우리 인간은 위기가 닥칠 때, 즉 폭탄이 떨어지거나 홍수가 났을 때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33)

 

만일 어떤 것을 아주 깊게 믿는다면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노시보 효과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하나 있다면 결코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에 불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가 예측하는 일은 일어나게 된다. (40)

플라시보는 나에게, 노시보는 타인에게. 둘을 가르는 차이점. 

 

아직도 많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뉴스의 이 같은 효용을 말하며 권하지만 과학자들의 결론은 이와 크게 다르다. 수십 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뉴스는 정신 건강에 해롭다. 1990년대 처음으로 이 분야의 연구를 개척한 사람은 조지 거브너였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도 만들었다. '잔혹한 세계 증후군mean world syndrome'으로, 임상 증상은 냉소주의, 염세, 비관주의 등이다. 뉴스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더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우리 개개인이 세상을 개선하는 데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경항이 있다. 이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더욱 크다. (45)

책 <팩트풀니스Factfulness>가 떠올랐다.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노시보로 작용해왔다. 1990년대 경제학 교수인 로버트 프랭크는 인간은 결국 이기적이라고 보는 시각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관대함을 측정하기 위해 설계된 다양한 과제를 부과했다. 결과는? 경제학을 더 오래 공부할수록 점점 더 이기적이 되었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프랭크의 결론이다. (50)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이들 사상가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현실주의자'라고 칭송받았던 반면, 이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상가들은 인간의 고결함을 믿는다고 조롱을 당했다는 점이다. (52)

 

이와 대조적으로 희망을 가질 이유는 언제나 잠정적이다. 실제로 나빠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아직은. 당신은 사기당하지 않았다-아직은. 이상주의자는 평생 동안 옳을 수 있지만 여전히 순진하다고 일축된다. 이 책은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이며 불가능한 일도 내일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현실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54)

새로운 현실주의. 

 

한마디로 인간은 포커페이스가 전혀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감정을 노출하는 동물이며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이것은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의 특별한 능력이다. 사교적인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 더 즐거울 뿐만 아니라 필경 그들 역시 더 똑똑해지기 때문이다. (115)

 

보어세마 교수는 나에게 "문제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들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해낼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요.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199)

 

사실 한나 아렌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품위 있다고 믿는 보기 드문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사랑과 우정에 대한 욕구가 증오와 폭력에 대한 어떤 성향보다 더 인간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가 악의 길을 택할 때 우리는 미덕처럼 보이는 거짓말과 진부한 경구 뒤에 숨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낀다. 아이히만이 그 대표적이 예이다. (248)

한나 아렌트를 잘못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이것이 키티 제노비스의 실제 이야기이다. 심리학과 1학년뿐만 아니라 언론인 지망생도 반드시 읽어야 할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첫째,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얼마나 자주 엉망이 되는가. 둘째, 기자들이 선정적인 이야기를 팔기 위해 얼마나 교묘하게 자판을 두드리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소를 신뢰할 수 있는 때는 정확히 위급한 상황에서라는 점이다. (274)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에 따르면 우리의 적이 악의로 가득한 가학성애자들이라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이것을 '순수한 악의 신화'라고 부른다. 실제로 우리의 적은 우리와 흡사하다. (292)

 

그러나 그는 실망했따. 켈트너는 <군주론>이 처방한 대로 행동한다면 캠프에서 바로 쫓겨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선사시대와 마찬가지로 이 작은 사회는 오만함을 참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을 멍청이라 생각하고 차단해버린다. 켈트너의 발견에 따르면 권좌에 오른 것은 가장 친절하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친근한 자의 생존이다. (315)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덜 받으면 그들이 더 냉소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게 사실일까?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권력의 영향 중 하나는 타인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으르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에게는 감독과 감시, 관리와 규제, 검열과 명령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권력은 당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당신이 이 모든 감시를 담당해야 한다고 믿게 될 것이다. (318)

무섭다. 
몇몇 떠오르는 인물들만 생각해봐도.. 대개 일치한다.

 

우리는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 동류의식을 상상하는 법을 배웠다. 종교, 국가, 기업, 국민은 모두 실제로 우리의 마음속, 지도자와 우리 자신이 말하는 이야기 속에만 존재한다. 아무도 '프랑스'를 만나거나 '로마 가톨릭 교회'와 악수한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허구를 믿기로 결정하면 상관없다. (324)

 

생각해보자. 왜 사람들은 일주일에 40시간 동안 금속이나 종이조각 혹은 은행 계좌에 숫자 몇 개를 추가하는 대가로 우리가 '사무실'이라고 부르는 우리에 숨죽이고 갇혀 있을까? 우리가 권력의 정치 선전에 설득당했기 때문일까? 만일 그렇다면 왜 반대자가 사실상 없는 것일까? 왜 아무도 세무기관에 가서 "안녕하세요. 방금 신화의 힘에 관한 재미있는 책을 읽었는데 돈이 허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올해는 세금을 내지 않겠어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자명하다. 청구서를 무시하거나 세금을 내지 않으면 벌금이 나오거나 수감된다. 이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국은 당신을 뒤쫓을 것이다. 돈은 허구일 수 있지만 매우 실제적인 폭력의 위협이라는 강제력을 갖는다. (329)

 

스미스와 흄 같은 영향력 있는 합리주의자들은 공감 및 이타주의와 관련해 인간이 보여주는 방대한 능력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철학자들이 우리의 훌륭한 자질에 그토록 익숙하다면 그들의 제도(민주주의, 무역, 산업)는 왜 비관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을까? 왜 그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계속 키워왔을까?
그 대답은 계몽주의 사상에 내재해 있는 모순을 정확하게 표현한 데이비드 흄의 책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악한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 단순히 정치적 격언에 불과하다. 물론 어떤 격언이 실제로는 거짓이면서 정치에서는 참이어야 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해 보이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서 흄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의 본성이 이기적인 것처럼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마음속에 노시보라는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이것이 계몽주의와 더 나아가 우리 현대사회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인간 본성에 대한 틀린 모델을 기반으로 사회를 계속 운영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일까? (344)

틀린 모델일 수도 있다-라니. 
너무 당연한 일이라, 떠올려보지도 못한 생각이었는데. 

그런거라면 너무 반갑겠다.

 

한 가지 더 좋지 않은 소식은 긍정적인 기대가 매우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악몽도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피그말리온 효과의 반대인 골렘 효과Golem Effect는 원래 프라하 시민을 보호하던 생물이 일탈해서 괴물로 변한다는 유대인 신화 속 이름에서 유래했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마찬가지로 골렘 효과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기대를 할 때 우리는 그들을 자주 쳐다보지 않게 되며 그들과 거리를 두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자주 웃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로젠탈의 학생들이 '멍청한' 쥐를 미로에 풀어놓았을 때 했던 일을 똑같이 반복한다. (354)

나의 작년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쩌면 나도 그를 강화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골렘 효과를 알든, 모르든.

 

증오와 마찬가지로 신뢰도 전염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는 누군가 흐름을 과감히 거스를 때 시작된다.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비현실적이고 심지어 순진하다는 취급을 받는다. (359)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것은 보상의 약속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뿐이다. 그러나 데시는 이 이론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의심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등산(힘들다!), 자원봉사(무료인데!), 임신(강렬하다!)처럼 행동주의적 관점에 맞지 않는 온갖 종류의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다닌다. 사실 우리는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완전히 지치게 만드는 활동에 자유의지에 따라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왜? (368)

보상만이 전부가 아닌 우리의 삶.

 

사회학자와 심리학자 모두 이러한 진전에 대해 경각심을 나타냈다. 미국에서 시행된 장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스스로 느끼는 상황 통제력internal locus of control'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84)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놀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놀이는 고정된 규칙 및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제약과 제한도 없는 것이다. 놀이는 부모가 옆에서 소리를 지르는 인조 잔디 구장이 아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감독 없이 야외에서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 놀이이다. 아이들은 이런 종류의 놀이를 할 때 스스로 생각한다. 아이들은 위험과 약간의 허술함을 감수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가다듬고 동기를 부여하는 훈련을 한다. 구조화되지 않은 놀이는 지루함에 대한 자연의 치료법이다. (386)

'놀이'의 중요성을 다양한 경로에서 듣고 있다. <이상한 정상가족>에서도 '놀이터'의 중요성을 듣고.
그러고 보면 정말 '놀'면서 큰 것 같다. 클 수 있었고, 다칠 수 있었고, 나을 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큰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당연히 서로 경쟁하는 게임은 이러한 사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성인 토너먼트와 달리 구조화되지 않은 놀이에서는 참가자가 지속적으로 타협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불행해지면 언제라도 게임을 끝낼 수 있다. (388)

 

오늘날 장난이 지나친 아이들은 심지어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행동장애의 진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는데, 그중 가장 좋은 예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일 것이다. (390)

'진단'율이 늘고 있다는 것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자유를 관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는지의 여부이다. 이것은 중대한 질문이다. 심리학자 브라이언 서턴스미스는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다. 놀이의 반대는 우울증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유도 놀이도 내재적 동기도 없이 일하는 방식은 우울증이 급속히 확산되는 것을 부채질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우울증은 이제 전 세계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질병이 되었다. 우리의 가장 큰 결핍은 은행 계좌나 예산 명세서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다. 우리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부족하다. 놀이가 부족하다. (402)

 

우리 경제의 큰 부분은 민영화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공산주의 모델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이는 너무 정상적이고 명백해서 더 이상 눈에 띄지도 않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식탁에 앉아 있고 소금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놓여 있다. "소근 좀 건네주세요"라고 말하면 누군가 무료로 소금을 건네준다. 인류학자들은 이것을 일상적 공산주의everyday comminism라고 일컫는다. 인류는 공원과 광장, 음악과 이야기, 해변과 침대를 공유하면서 이런 종류의 공산주의에 열광한다. 아마도 이런 관대함의 가장 좋은 예는 가정일 것이다. (417)

일상적 공산주의라니, 흥미로운 개념이다.

 

하딘의 논문이 간과한 중요한 세부사항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은 말할 수 있다. 농부와 어부 그리고 이웃은 자신의 밭이 사막으로 변하지 않고, 호수에서 물고기가 남획되지 않고,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합의하는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422)

 

오늘날까지 알래스카 영구 기금 배당금은 전적으로 무조건적이다. 이는 특권이 아니라 권리이다. 그 덕분에 알래스카 모델은 구식 복지국가의 정반대가 된다. 일반적으로 당신은 먼저 자신이 많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거나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충분히 궁핍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증빙하는 수십 개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마친 뒤에야 적은 돈이라도 지원받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시스템은 사람들을 슬프고 무기력하며 타인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반면, 무조건적인 배당금은 완전히 다르다. 이는 신뢰를 키워준다. 물론 동료 알래스카 사람들이 술과 마약으로 배당금을 낭비할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알래스카 사람들은 배당금을 교육과 아이들에게 투자했다. (428)

 

나중에 어느 기자가 훌리오에게 왜 자신에게 강도질을 하려고 했던 사람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는지를 물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 생각에는 아시다시피 말이죠, 당신이 사람들을 올바르게 대하면 그들도 당신에게 그렇게 대할 것이라고 희망할 수 있으니까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아주 간단한 이치죠." (433)

나랑 생각이 비슷해서 너무 반갑고 기뻤다. 이 문장이. 

 

최근에야 나는 예수님이 매우 합리적인 원칙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이를 '비대칭적 행동non-complementary behaviour(혹은 비상보적 행동)'이라고 일컫는다. 앞에서 언급했더니 대부분의 경우 우리 인간은 서로를 미러링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칭찬을 하면 당신은 신속하게 호의로 보답하고, 누군가 불쾌한 말을 하면 당신은 헐뜯는 말로 재빠르게 응수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앞의 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선순환과 악순환이 학교와 기업 및 민주주의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434)

비상보적 혹은 비대칭적이라는 말은 전공 공부를 하며 친숙해진 개념이다. 
그동안 나의 행동이나 마음, 삶의 모습도 이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 너무나 적확한 표현을 찾은 것 같아 기뻤다.

 

노르웨이 교도소는 나쁜 행동을 예방하는 곳이 아니라 나쁜 의도를 예방하기 위한 곳이다.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이 정상적인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정상성 원칙'에 다르면 벽 안의 삶은 가능한 한 벽 밖의 삶과 비슷해야 한다. (441)

내가 끝내 동의하지 못했던 건, 범죄자들에 대한 처우였는데 이 책을 읽고는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종현이 오빠가 떠올랐다. 
교도관인 그가 너무 힘들어하는 걸 종종 보았기 때문에, '교정직'이라는 직군을 위해서도 시도해봄직 아니한가?
단순히 처벌의 목적보다 정말로 이 사회에의 적응, 나아가 또다른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마음에서라면.. 우리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사료된다. 
굉장히 급진적이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결정일테다. 

 

다른 쪽 뺨을 내어주는 접근방식의 최근 사례는 덴마크의 도시 오르후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3년 말 오르후스의 경찰은 시리아에 가서 사우고 싶어 하는 젊은 무슬림들을 체포하거나 감옥에 보내는 대신 차 한 잔과 멘토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동원해 이 10대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동시에 경찰은 지역 모스크와의 유대를 강화했다. 
오르후스의 접근법을 약하거나 순진하다고 비평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사실 경찰은 대답하고 어려운 전략을 택한 것이었다. "쉬운 길은 새로운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개인을 대상으로 전문가 패널, 상담, 의료, 복학과 취업 지원, 숙소 등 실질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정치적 신념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460)

순진한 선택이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라는 것.
결국 이 책의 골자인 '선(善, good)은 용기'와 상응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원래 친절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것은 감상적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화와 용서를 믿는 것은 용감하고 현실적이다. 뮬러로웨의 호세 소콜로프는 콜롬비아 군대의 한 장교가 광고대행사의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몇 달 뒤 그는 작전 중 사망했는데, 호세는 친구에게서 배운 내용을 여전히 기억하며 감정적이 된다. 장교는 그에게 "나는 이 일을 하고 싶다. 관대함이 나를 강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부하들도 스스로 더 강인하다고 느끼게 해준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세월만큼 오래된 진리이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이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신뢰와 우정에 관한 진실이자 평화의 진실이다. (504)

이 책의 요체인 부분. 
그리고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 

나는 용감하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삶에서 지켜야 할 열 가지 규칙>

1. 의심이 드는 경우 최선을 상정하라.
2. 윈-윈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생각하라.
3. 더 많은 질문을 제기하라.
4. 공감을 누그러뜨리고 연민을 훈련하라.
5.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비록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할지라도.
6.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당신 역시 스스로 가진 것을 사랑하라.
7. 뉴스를 멀리하라.
8. 나치에 펀치를 날리지 말라.
9. 벽장에서 나오라: 선행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10. 현실주의자가 되라.
이제 삶에서 지켜야 할 나의 가장 중요한 규칙을 이야기하겠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이루고자 한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현실주의'라는 단어의 의미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현실주의자라는 표현이 현대에 이르러 비관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냉소주의자와 동일어로 쓰인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사실 진상을 모르는 것은 냉소주의자이다. 사실 우리는 행성 A에 살고 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정말로 되고 싶어 하는 그곳 말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이 되어라. 용기를 내라. 스스로의 본성에 충실하고 타인에게 당신의 신뢰를 보여주어라. 대낮에 선을 행하고 자신의 관대함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처음에는 속기 쉽고 순진하다고 묵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 내일의 상식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이제 새로운 현실주의를 위한 시간이 왔다. 인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이다.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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